속초시 영랑호 수상데크 설치 논란

2020-11-24 11:47:38 게재

속초시 "주민들이 바라는 숙원사업"… 시민단체 "시민 7435명이 반대서명"

속초의 시인 고 이성선 선생은 "속초가 속초일 수 있는 것은 청초와 영랑, 두 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노래했다.

청초호와 영랑호는 동해안 특유의 석호(潟湖 바다자리호수)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생태계의 보고, 속초 영랑호 보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속초시가 영랑호 중간을 남북으로 잇는 폭 2.4m, 길이 400m의 부교(뜬다리)를 설치하는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40억원(특교세 10억원, 도비 19억5000만원, 시비 10억5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인 이 사업은 △부교 2개 △물가탐방로 데크 △야외체험학습장 △수중광장(부교1 가운데 설치. 지름 30m 규모) △범바위와 영랑호 일대 야간조명(수목투광, 지붕투광, 바위투광, 데크보행로 스텝조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속초시가 실시설계용역 중간설명회에서 공개한 영랑호 내 부교와 수중광장


◆"석호 수면은 생태계 핵심구역" = 영랑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부교와 수상광장 등에 대해 속초시민을 비롯, 7435명이 반대서명을 했다. 속초지역 중고등학생들도 반대서명에 나섰다.

'영랑호를 지키기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과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은 13일 속초시에 '영랑호생태탐방로 조성사업 환경피해 의견서'와 영랑호 지키기 시민서명부를 제출했다.

이들은 또 협의기관인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을 방문 △영랑호를 비롯해 해안 석호 보전과 복원에 힘써온 원주지방환경청의 의견을 들을 것 △현지실사를 통해 환경영향을 조사할 것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의 의견을 수렴할 것 △훈령에 명시된 '부동의' 결정을 적극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은 동해안 석호 중에서 처음으로 호수의 핵심지역인 '수면'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이 허가가 난다면 그동안 많은 노력을 들여 보전과 복원을 해온 동해안 석호 전반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엄경선 설악닷컴 대표는 "고성 송지호에도 지난해 12월 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놓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며 "앞으로 고성 화진포호나 강릉 경포호에도 호수 한가운데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는 사업이 뒤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랑호는 최악의 수질 5등급을 개선하고 주변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동해안 석호 중에서 가장 많은 사업비가 투입된 곳이다. 1993년 이후 524억원이 투입되었고, 이중 국비가 300억원 이상 들어갔다.

지금까지 환경부는 수차례 조사연구작업을 통해 동해안 석호 복원계획도 세웠고, 철새도래지 조류센서스와 모니터링작업도 진행중이다. 영랑호를 대상으로 석호살기기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석호의 수면은 생태계 핵심구역(core area)으로 엄격한 보전 보호가 필요한 지역으로, 신규 개발행위에 대한 인허가는 원칙적으로 제한할 것"이라는 보전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영랑호 개발사업에 대한 결정권을 해양수산부(동해지방해양수산청)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석호가 특수한 생태계지역이라고 해도, 법적으로 영랑호는 일반 바다와 같은 공유수면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도 "사업 재검토" 요청 = 속초시는 이 사업에 대해 "철새와 백로를 이용한 생태관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오히려 철새와 백로, 어류를 내쫓고 서식지를 파괴하는 사업"이라고 비판한다.

환경부 조사 결과 지금까지 영랑호에서는 '흰꼬리수리'(멸종위기 1급.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천연기념물) '큰고니'(멸종위기 2급) '검은머리갈매기'(멸종위기 2급) '흰목물떼새'(멸종위기 2급) '새매'(멸종위기 2급)와 국내 미기록종 '버플헤드'(꼬마오리)가 발견됐다.

지역 환경단체의 모니터링에서는 '원앙'(천연기념물) '혹고니'와 '수달'(천연기념물. 멸종위기 1급), '수리부엉이'와 '노랑부리저어새'(천연기념물. 멸종위기 2급), '큰기러기'와 '개리'(멸종위기 2급)가 발견됐다.

박그림 설악산지키기국민행동 대표는 "영랑호 호수 주변은 유원지로 개발했지만 호수 안쪽 수면과 물가에 대규모 인공구조물을 설치하겠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며 "특히 호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부교와 수중광장 등의 시설물은 영랑호 생태계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속초시청 관광개발과 관계자는 "영랑호 둘레길 7.4km를 한바퀴 도는 데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호수 가운데로 지름길을 만들어달라는 시민들 민원이 많다"며 "새들이 많이 오는 모래톱과는 어느 정도 이격을 했고,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도 개별적으로 만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업에 도비 19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강원도 관광개발과도 9월 1일 속초시에 "속초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 사업내용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는 "최근 속초시로부터 실시설계안을 받아 환경영향평가 협의대상 여부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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