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청장 성탄전야에 소방서 산타됐다

2020-12-28 12:05:39 게재

영등포동 쇼핑몰 화재 대응에 주민 '소방관 응원' 요청 편지

화재예방·이재민대응 협업논의

"오늘이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꼭 산타가 된 것 같아요." "야간 출동 다녀와 맛있게 먹겠습니다."

채현일 서울 영등포구청장이 성탄 전날인 지난 24일 오후 영등포소방서를 찾았다. 발달장애인 희망일터 '꿈더하기'에서 만든 샌드위치와 커피를 간식으로 챙겼다. 채 구청장은 "발달장애인 자립을 위한 시설에서 원가를 뛰어넘게 만든 특별한 간식"이라고 강조했다.

채현일(오른쪽) 영등포구청장이 24일 영등포소방서를 방문, 권태미(왼쪽) 서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영등포구 제공


이날 소방서 방문은 명절 직전 인사차 들른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다. 영등포동 한 주민 손편지에 대한 화답이다. 지난 9일 화재가 발생한 쇼핑몰 건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주민인데 인명피해를 막은 소방관들을 칭찬·응원해달라며 채 구청장에 편지를 띄웠다.

영등포역 앞 15층 복합건물 1층에서 원인미상 화재가 발생, 덕트를 통해 상층부까지 연기가 유입된 사고였다. 특히 건물 3층과 4층에는 대형 찜질방과 목욕탕 등이 있어 자칫 큰 인명사고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방서 121명, 영등포구 15명 등 146명이 동원돼 23명이 대피했지만 다행히 인명사고는 단순 연기흡입 13명에 그쳤다.

"잠에서 깼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타는 냄새가 나서 문을 열었더니 복도가 연기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편지를 쓴 주민은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안났지만 간신히 119에 연락을 했다"며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소방서 대응에 외투와 마스크까지 챙겨 준비하고 있다가 구조대원 손을 잡고 무사히 탈출했다. 그 와중에 추위에 떠는 피해 주민들에 쉴 공간을 마련해준 소방관들과 아침 일찍 주민들을 위로하던 구청장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오전 7시 18분 불이 났다는 신고 이후 9시 4분 화재가 완진됐고 9시 13분 '대응 1단계'가 해제되면서 주민들은 안전하게 귀가했다.

주민은 "아침에 와서 '필요한 것이 있느냐' 물었던 구청장에 늦게나마 얘기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 펜을 들었다"며 "고생하신 영등포소방서 대원들을 격려·칭찬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특히 그는 소방서에서 지난해 화재감지기 점검에 잘 대응, 인명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채현일 구청장이 소방서에 간식과 감사패를 전달한 이유다.

채 구청장은 손편지를 공유하며 "화재감지기는 몰랐던 내용"이라며 "예전에 연기감지기가 작동되지 않아 노부부가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는데 참 감사하다"고 전했다. 권태미 영등포소방서장은 "낡은 아파트는 화재감지시설이 미비, 단독 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해야 한다"며 "구에서 지원한 1000개에 더해 자체 예산을 활용, 위험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고 화답했다.

사고예방과 이재민 대응을 위한 협업방안도 나왔다. 권 서장은 "연간 두차례 화재안전점검을 실시하는데 공용공간이 아닌 개별공간은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며 "구 차원에서 캠페인을 펼쳤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겨울철 이재민을 위한 응급구호물품을 현장출동때 구비해달라는 요청도 이어졌다. 현재 구비된 물품은 장기 이재민용이라 당장 홑옷차림으로 탈출한 단기 이재민에 적합지 않고 가격대도 비싸기 때문이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소방서에서 구에서 할 역할까지 해주고 있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주민을 위한 영등포구와 소방서 연대와 협력은 다른 지자체보다 원활하다"며 "주민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 '안전도시'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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