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만에 '친권자 징계권' 삭제

"이제부터 시작 … 체벌 관습 없애야"

2021-01-11 11:42:47 게재

아동인권단체 "정부 차원 노력 필요" … 스웨덴 등은 대대적인 체벌금지 홍보

‘정인이 사건’ ‘여행가방 감금 학대 사건’ 등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진 가운데 국회에선 8일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징계권 삭제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아동인권단체들은 “아동이 어떠한 환경에서든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 주체라는 점을 국가가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깊다”면서도 “징계권 삭제는 첫 걸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훈육을 위한 체벌에 대해 관대한 인식이 있는 만큼 이를 뿌리뽑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민법 제915조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이 조항은 1958년 민법 제정 후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민법상 징계권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었지만 유독 아동학대 사건에선 가해부모들의 핑곗거리가 돼 왔다. 지난해 천안에서 9세 아동을 여행가방에 7시간 동안 가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도 학대가해자인 의붓어머니는 경찰 조사 등에서 '훈육 차원의 체벌'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아동인권 단체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사망의 원인에는 아동에 대한 체벌을 용인하고 폭력을 방조하는 우리 사회의 견고한 통념과 제도가 있다"면서 징계권 삭제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여러 노력 끝에 민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인권단체들은 환영성명을 내고 “(징계권 조항은)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핑곗거리이자 체벌로 자녀를 훈육할 수 있다는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면서 “징계권 조항 삭제는 아동을 모든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법률 개정이라는 형식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체벌관습을 없애고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이후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정부 차원에서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지원책을 부모 가까이에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부모 10명 중 4명은 자녀를 키울 때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법 개정 이후 체벌 관습을 바꾸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아동체벌을 금지한 스웨덴은 매일 아침 가족 식탁에 올라가는 우유갑에 아동체벌금지 홍보내용이 들어가도록 하는 등 정부 차원의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 이후 체벌을 지지하는 부모의 비율이 1965년 53%에서 1999년 10%로 급감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한편, 이번 민법 개정으로 한국은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61번째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인권단체 '아동에 대한 체벌 근절을 위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1979년 스웨덴이 처음으로 아동 체벌을 금지한 이래 독일·프랑스 등 세계 60개국이 아동체벌 금지에 합류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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