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미국제재 … 반도체 공급부족 지속

2021-01-26 12:08:27 게재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IC를 설계하는 중국 중견 반도체기업 대표 궈밍은 지난해 3분기 반도체 수급의 변동 기류를 처음 감지했다. 즉각 거래중인 대만의 반도체 수탁생산업체(파운드리)에 연락해 2021년 발주 분량을 놓고 협상을 시작했다. 거래처 역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협상은 궈밍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그는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다행히 장기 거래처인데다 발주량도 많아 올해 분량은 챙길 수 있었다"면서도 "다만 에누리없이 전액을 지불해야 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는 일반적으로 수급의 진폭이 크다. 하지만 최근의 공급 부족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다. 반도체 호황 사이클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써드브릿지그룹'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에다 미국의 대중 기술제재 등이 어우러지면서 반도체 공급부족 상황을 낳았다. 그에 따라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대만의 TSMC나 UMC 등 파운드리기업들의 수익이 커질 전망이다.


대만 소재 로직기반 불휘발성 메모리 제조업체인 'e메모리테크놀로지'의 대표는 "거의 모든 파운드리업체가 올해 생산량이 모두 예약됐다고 말한다"며 "공급부족 상황이 최소 올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급 불안을 이끈 요소는 다양하지만 서로 관련은 없다. 우선 반도체 최대 시장인 스마트폰과 PC의 수요가 급증한 게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원격통신의 활용,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증가, 온라인 교육 상품·서비스 출시 등으로 소비가전의 수요가 치솟았다. 특히 PC와 TV가 그렇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글로벌 PC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6% 증가한 8130만대였다. 지난 10년 간 연간 최대폭 증가다.


동시에 스마트폰 칩 수요가 치솟았다. 이는 코로나와 관련이 없는 요소다. 미국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에 대한 칩 공급을 단절하기 위해 제재를 가했다. 화웨이는 제재가 발효되기 전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5~9월 반도체 주문량을 크게 늘렸다.

오포와 샤오미 등 중국의 일부 스마트폰 제조사들 역시 지난해 8, 9월 반도체 주문량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화웨이가 놓치게 될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오포는 2020년 하반기 1억1000만대의 스마트폰에 들어갈 반도체를 주문했다. 상반기 주문 물량의 2배였다.

고사양 5G 스마트폰 모델의 확산도 영향을 미쳤다. 대만 소재 반도체 리서치기업인 '이사야리서치'는 "제조사들이 생산을 늘리려는 대상은 5G모델이다. 여기엔 4G 폰보다 더 많은 반도체가 들어간다. 따라서 스마트폰 칩이나 관련 부품에 대한 주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업체가 다른 용도의 반도체를 만들 여력을 줄인다"고 지적했다.

기타 요인도 있다. 중국 외 일부 국가의 반도체 업체들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일부 조업을 중단했다. 유럽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NV'의 주요 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0월엔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아사히카세이'가 소유한 웨이퍼 공장에서 큰 불이 나 수급상황이 악화됐다.

반도체를 이용하는 모든 기업이 수급 불안정에 고통받지만 주력시장이 아닌 분야의 기업들의 타격은 더 크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제한된 용량을 스마트폰이나 PC, TV 등 주력업계에 우선 배정하기 때문이다.

궈밍 대표는 "웨이퍼 생산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수익이 큰 일회성 거래보다는 장기 거래처의 주문을 중시한다"며 "파운드리 제조용량이 넉넉할 때엔 중소규모 기업도 단발성으로 칩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가격을 높이 부른다고 해도 파운드리 업체의 물량 배정 혜택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확보전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업종 중 하나는 자동차제조사다. 친환경 스마트 자동차 덕분에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주력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구매자다.

e메모리테크놀로지 대표는 "파운드리기업에 공급용량이 충분하지 않다면, 자동차 전장기업들은 공급리스트에서 누락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자동차기업은 모델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중일 합작기업인 '광치도요타모터'는 차이신에 "이달 들어 일부 생산을 중단했다. 반도체의 안정적 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곧바로 정상 회복됐다"고 말했다.

중국 선왕훙위안증권이 지난해 12월 초 낸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자동차 제조사의 생산능력이 약 10% 약화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달 초 중국자동차제조자협회(CAAM)는 "공급부족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생산이 단기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안정성이 약화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공급 부족은 반도체 전반에 걸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컨트롤러 제조사인 미국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는 이달 가격인상을 공지했다. 이 업체와 거래하는 한 기업 대표는 차이신에 "가격인상 폭은 평균 10~15%"라고 말했다. 중국 '선전 구딕스 테크놀로지'도 최근 "올해 디스플레이 지문센서IC 가격을 30%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차이신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만 10여개 반도체 제조사들이 일제히 가격인상을 공지했다.

공급 부족은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 위치에 있는 칩 제조사의 이익을 높이고 있다. 대만 TSMC와 중신궈지(SMIC) 두 곳의 파운드리기업은 지난해 2,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트'는 지난해 상위 15개 반도체 공급업체의 연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 늘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수요 증대에 대처하기 위해 설비용량을 확대하고 있다. SMIC는 지난해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12인체 웨이퍼 공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TSMC는 올해 하반기 대만에 설립될 신규 패키징·검수 공장을 시험가동하는 한편 미국에 5나노미터 웨이퍼 생산공장을 착공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시안의 생산공장 용량을 확대하고 있다.

'선전반도체산업협회' 사무총장 장쥔펑은 "하지만 그같은 계획은 시간이 걸린다. 결국 올해 반도체 수급 상황은 아주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