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필리핀에서도 램지어 위안부 논문 비판

2021-02-26 12:36:50 게재

일 학계·시민사회, 내달 14일 웨비나

필리핀 위안부단체 "우리 피해자도 모욕"

일본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에 대해 일본의 학계와 시민사회, 필리핀 피해자들이 공개 규탄에 나섰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역사학자와 경제학자, 법학자 등 학계를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잇따르는 가운데 한국은 물론 일본과 제3국 피해자들도 비판에 동참함으로써 램지어 교수와 학술지에 대한 압박 강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학술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파이트 포 저스티스'(Fight for Justice)는 일본사연구회, 역사학연구회, 역사과학협의회 등 학술단체와 함께 다음 달 14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하는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이 세미나에서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선구자이자 파이트 포 저스티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명예교수가 램지어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할 예정이다.

차타니 사야카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도 '램지어 씨 위안부 논문을 둘러싸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역사학자인 그는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에 대한 반박문을 낸 바 있다.

이 밖에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산업대 교수, 이타가키 류타 도시샤대 교수, 요네야마 리사 토론토대 교수 등도 이번 세미나에서 발언할 예정이다.

세미나 주최 측은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계약에 의한 매춘부'로 묘사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역사수정주의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자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 매춘부라는 주장을 지속해서 제기해왔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이들의 주장을 반복한 셈이다. 특히 그의 논문은 학문적 성실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을 연구자들로부터 받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선 '위안부=자발적 매춘부'라는 램지어 교수의 역사 왜곡에 대한 논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세미나는 램지어 교수 위안부 논문 논란이 제기되고 나서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관련 학술 모임이다. 일본 학계와 시민사회가 해당 논문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인 셈이다.

세미나 개최에 관여하고 있는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위안부 왜곡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랫동안 일본 시민사회가 해왔다"며 램지어 교수의 이번 논문을 통해 "미국 등 영어권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 우익이 역사수정주의에 기반해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 대해 "일본 내 시민사회가 (램지어 논문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영어권 네트워크를 통한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전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단지 개인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 일본 우익과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전략에 의한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램지어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논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며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램지어 규탄 목소리는 필리핀에서도 터져나왔다.

필리핀의 위안부 피해자 단체인 '라일라 필리피나'는 25일(현지시간)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2월16일자 성명에서 "우리는 '위안부'를 유급 성 노동자로 묘사한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 전쟁의 성 계약'에 담긴 주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라일라 필리피나는 "(램지어 교수가) 대부분 한국 피해자들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 논문은 가장 끔찍한 형태의 군사 폭력을 겪었던 필리핀 내 일본의 전쟁 범죄피해자들도 함께 모욕한 것"이라며 분노했다.

이들은 "램지어의 논문은 전쟁 당시 일본의 군대 성노예에 관한 이야기 전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얄팍한 시도에 불과하다"며 "이는 군대 성노예의 공포를 세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 논문은 과학적 가치를 지닌 연구물로 가장할 수조차 없다"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저자 자신만의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규정했다.

필리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를 향해서도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소위 '역사 연구'를 활용해 역사 부정과 수정주의에 오랫동안 관여해왔다"면서 "그러한 수정주의는 과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군국주의와 헤게모니 전쟁으로의 복귀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김상범 기자 연합뉴스 종합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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