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유엔에 진정

2021-03-23 11:51:14 게재

부하 성폭행한 해군 간부 사건 2년째 대법원 계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한국정부·군에 권고해달라"

성소수자 부하인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간부 2명에 대한 대법원 재판 결과가 2년 넘게 나오지 않자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유엔에 진정을 제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군인권센터 등 10개 단체로 구성된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2일 이 사건에 관한 진정서를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성소수자 특별보고관, 여성과 소녀의 권리 실무위원회, 사생활의 자유 특별보고관 앞으로 접수했다고 22일 밝혔다. 공대위는 "대법원의 판결이 2년 이상 지연됨에 따라 정의실현이 지연돼 국제인권규범에서 규정한 피해구제를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2010년 성소수자인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2017년 재판에 넘겨진 해군 간부 2명은 2017년 해군보통군사법원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을 맡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2018년 11월 두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상고 후 이 사건은 2년 넘게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공대위는 유엔에 접수한 진정서에서 "피해자는 사건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속적 피해를 봤고 수년간 병원치료를 받았다"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여군 인권보호 및 군내 성폭력 근절 대책이 미흡해 국제인권규범이 요구하는 인권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이 성폭력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에 근거해 판결하도록 하라는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단지 '물리적 폭행'이 범죄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식의 판결을 해 국제인권규범에서 성폭력을 동의 여부에 따라 처벌하도록 한 권고를 위반함에 따라 국제인권규범이 요구하는 인권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고도 지적했다. 이어 유엔 인권 전문가들이 한국 정부에 즉각적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 군내 성소수자(LGBTI) 보호 및 성폭력 근절 노력 대법원의 신속한 상고심 진행 등에 대해 권고와 질의를 제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법원과 해군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촉구했다. 공대위는 "대법원이 흘려보낸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가해자들은 군 내부에서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은 상태이며, 매년 수천만원 상당의 봉급까지 수령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반면 다시 함정 근무로 복귀해야 할 피해자는 완전히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대법원의 선고만을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이번 진정을 통해 상고 이후 아무런 결정 없이 사건을 방치하는 대법원에 결정을 촉구하고, 한국 여군 성폭력과 군 사법체계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인권 기준으로 판단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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