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박한 일상, 보통의 삶

2021-04-21 11:43:21 게재
정영숙 나사렛새꿈학교 교장

이른 아침 벨 소리에 잠을 깼다. 낯선 목소리다. "정00 선생님이시죠? 코로나19 때문에 걱정되어 전화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5시다.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네, 저 00학교 졸업한 이00입니다." 아! 아주 오래전 특수학교 근무할 때 만났던 제자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 일요일 시내 어딘가에서 지나가는 나를 보았고, 선생님과 통화하고 싶어 여기저기 전화번호를 알아보고 전화를 했단다. 그날 이후로 종수(가명)는 매일 똑같은 문자로 안부를 묻는다. "선생님,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리고 어김없이 빠트리지 않는 말이 있다. "답장 주세요." 문자를 받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아린다. 집안에서 가족들이 일터에 나간 시간 혼자 적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종수의 일상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눈물바다된 졸업식장

올해 2월 학교 졸업식 때 일이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 갑자기 어디선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한 학생이 있는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그 학생이 그렇게 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학생을 지원하는 사람이 학생의 표정과 몸짓 등을 살펴서 그 의미를 해석하며 지원을 해왔던 터였다. 식장에 있던 모든 이가 하나같이 "아! 수현(가명)이가 서로 헤어지는 것을 아는 것 같아요." 그랬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수현이는 졸업식을 마치고 나면 매일 학교에 오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 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아쉬움을 울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졸업식장은 이내 눈물바다가 되었다. 정들었던 학생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도 있겠지만, 졸업 이후 수현이의 모습이 어떠할지 짐작되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 4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중도·중복 지체 장애 학교로 인가받은 학교는 재학생 90% 이상이 중도·중복 지체장애 학생이다.

그래서일까? 졸업생 중 가정에서 지내거나 시설에 입소한 학생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역에 있는 주간 보호 센터에서 낮 동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졸업할 학년이 다가오면 부모님들은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한다. 자녀가 성장하여 학교를 졸업하는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아니라, 학교 졸업 후에 '우리 아이를 받아 줄 기관이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이라 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올해 졸업생까지는 지역에 있는 기관에서 낮 동안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당장 내년에 졸업하는 학생들 진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국민총소득 세계 11위로 잘 사는 국가로 분류된다. 또 KDI 한국개발연구원에서는 2016~2017년 이후 국민 70% 이상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수준이 개선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가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고 민주주의 발전과 아울러 포용국가 실현을 위해 현 정부에서 펼쳐나가고 있는 특수교육 정책 탓일까? 학령기 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중도·중복장애 학생에 대한 교육적 지원은 예전과 비교하면 해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졸업 후 지역사회 포용 기대

중도·중복장애 학생을 위한 특별한 예산 지원이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덕분에 학교에서는 학생 요구 수준에 최적한 지원 방안을 찾고, 공적 기관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바라건대 장애 학생들이 학교에서 누렸던 이런 정당한 편의들이 졸업 후 지역사회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학교 졸업 이후 성인이 된 장애 학생들의 삶이 편안해지길 바란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여가를 보내고, 낮 동안 활동할 수 있는 기관과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지역에 있는 일터에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며 소박한 일상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로 하루를 여닫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보통의 삶을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