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 이후 회계개혁 점검 | ⑤ 기업과 감사인 책임 강화

"실적 악화된 기업, 재무제표 왜곡 않도록 더 주의 필요"

2021-06-18 11:19:15 게재

회계법인 품질관리실 인원 확대 … "기업들 위기의식 커지면서 자문서비스 늘어"

인터뷰 | 양승열 삼정회계법인 대표

"코로나 사태 이후 실적이 악화된 기업에 대한 재무제표상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감사를 완화할 경우 기업과 감사인이 더 많은 위험부담을 지게 될 것입니다."

18일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양승열 삼정회계법인 대표(품질관리실장)는 "코로나19로 지난해 많은 기업들의 경영실적이 악화됐고, 이러한 실적 악화는 일부 업종에서 상당기간 동안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 부실을 정확히 가려내야 하는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KPMG 산동회계법인 △KPMG 런던 사무실 근무 △KPMG 삼정회계법인 정보통신사업본부장(전) △KPMG 삼정회계법인 COO(전) △한국거래소 코스닥상장위원회 위원(전)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위원회 위원(전) △KPMG 삼정회계법인 품질관리실장(현). 사진 이의종 리포터


기업들은 재무제표 작성시 자산의 손상검토와 공정가치 평가를 수행한다. 손상검토와 공정가치평가는 기업의 여러 영업부문 및 기업이 투자하고 있는 여러 회사들의 향후 경영실적을 추정해 반영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향후 각 영업부문과 피투자회사들의 경영실적을 회사가 추정하고 감사인이 검토하는 데 어려움이 커졌다.

양 대표는 "실적이 악화된 기업의 경우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발생할 수 있고 자산의 손상검토에서도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계를 중심으로 감사 완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인의 관점에서 다른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양 대표는 "기업의 실적이 악화될 경우 기업과 감사인 모두 더 주의를 기울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기업이 손상검토 등 실적악화로 인한 영향이 큰 분야의 업무를 결산일이 도래하기 전에 사전에 수행해 감사인에게 제시하고, 감사인 역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한 분야에 대해 기업과 사전에 소통을 함으로써 감사를 보다 원활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임 강화로 달리진 감사현장 = 2018년 외부감사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회계처리 기준 위반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됐다. 양 대표는 최근 달라진 감사환경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회계법인들이 회계기준 위반에 따른 처벌 강화에 걱정을 많이 한다"며 "기업들은 직접 작성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외부자문을 거쳐 재무제표 작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기업의 감사위원회도 위험이 커짐에 따라 부담감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기간 중 각 단계별로 감사위원회와 회의를 갖는데, 위원들의 질문이 상당히 많아졌고 특정 이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며 "특히 회계처리 기준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계처리 이슈에 대한 회계법인의 자문을 많이 이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독립성 문제로 인하여 감사대상 기업에 대한 자문을 못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다른 회계법인으로부터 'PA(Private Accountant)'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최근 PA서비스를 위한 전담인력을 확대하고 있다.

양 대표는 "회계법인의 PA자문서비스 규모가 꽤 커지고 있다"며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전문지식을 가진 인력을 별도로 채용하기 어렵고, 회계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감한 이슈를 자체적으로 판단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회계법인의 자문을 얻어 재무제표와 주석을 작성하고 감사인에게 제출하는 과정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해외 근무 경험 회계사, 품질관리실에 우선 배치 = 회계법인들도 부실감사에 따른 책임이 높아졌기 때문에 품질관리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양 대표는 "삼정회계법인의 경우 품질관리 강화를 위해 품질관리실의 인원을 2018년 60여명 수준에서 2020년 100여명으로 대폭 확대했다"며 "신외감법 시행에 맞춰 회계법인들은 감사인력을 확충하고 품질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삼정회계법인은 해외 근무 경험자를 품질관리실에 우선 배치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 영국 등에서 감사경험이 있는 회계사들은 멤버펌 계약을 맺은 글로벌 회계법인들(삼정은 KPMG)이 개발한 감사 방법론(Methodology)과 툴(Tool)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를 회계법인 내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감사업무 담당 파트너를 평가할 때도 감사품질 비중을 70%로 높였다. 과거 마케팅 등 다른 요소들의 평가비중이 높았다면 지금은 감사품질의 중요성을 반영한 조치다. 양 대표는 "감사조서의 수준이 예전에 비해 확실히 좋아졌다"며 "감사계획단계부터 종결단계에 이르기까지 품질관리실이 다양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감사담당 파트너의 품질평가에 반영해 성과보상과 승진에 활용하기 때문에 감사담당 파트너가 감사품질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정회계법인은 2019년 3월 감사품질위원회(AQC)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AQC에는 품질관리실장과 감사부문 대표, 감사경험이 풍부한 파트너들이 위원으로 참석해 감사파트너의 해당 산업에 대한 경험, 감사역량 및 담당업무의 양 등을 고려해 감사담당 파트너 배정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

삼정회계법인에서 눈에 띄는 품질관리시스템 중 하나는 감사품질코칭 조직(Second Line of Defense, 2LD)이다. 2LD는 감사경험이 10년 이상인 회계사를 각 감사본부에서 지원받아 감사위험에 기초해 코치대상 회사를 선정(지난해 90여개)하고 감사 계획단계부터 종결단계까지 지속적인 코칭을 하고, 실제 감사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 등에 대해 분야별 정보를 공유하고 , 공통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법인 전체로 확산을 통해 감사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운영된다.

◆"손해배상 소멸시효 8년, 큰 부담" = 기업의 분식회계가 발생하면 부실감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다. 신외감법 시행에 따라 손해배상소송 소멸시효는 3년에서 8년으로 연장됐다. 회계법인들은 품질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과거 8년치 감사조서 등 자료를 보관해야 하고 소송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 대표는 "투자자 등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회계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부감사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민사소송과 달리 증권관련 집단소송이나 입증책임전환 등 여러 가지 특례가 마련돼 있다"며 "이러한 특례와 외국의 사례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사베인즈-옥슬리법에서 증권법 위반과 관련된 민사소송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정한 것과 비교하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회계업계 전체적으로 손해배상 준비재원은 지난해 3월말 기준 2조2607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9270억원) 대비 3337억원(17.3%) 증가했다.

◆판단 어려운 국제회계기준, 감독당국 역할 필요 = 양 대표는 회계처리 기준 위반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애매모호한 기준을 정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원칙중심이어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해석이 각자 다를 수 있다. 양 대표는 "회계처리 방식을 놓고 회계법인 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고 업계에서 혼선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회계기준원이나 금융감독원에서 경제 전반에 나타나는 동일한 이슈에 대해 의견들을 취합해 정리해주고 과거의 회계처리가 명백히 잘못되지 않은 한 회계정책의 변경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원칙중심 회계의 경우 현장에서 적용하기에 너무 어렵다"며 "회계법인들도 경제적 실질을 반영할 수 있는 회계처리를 할 수 있도록 연구 등 역량강화가 필요하지만 회계처리에 대한 기업 등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감독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전기 및 당기 감사인간의 이견이 있을 경우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위원회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다. 위원회의 결정대로 회계처리를 했더라도 금융당국이 회계처리 위반으로 판단할 경우, 위원회를 거쳤다는 점을 고려해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는 있지만 면책 대상이 되지 않는다.

금융감독당국은 코로나19와 관련해 기업 자산의 손상평가에 필요한 사용가치 측정과 관련된 감독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코로나19 종식시점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정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양 대표는 "코로나19와 같은 추정의 불확실성이 발생할 경우 감독당국이 선제적으로 합리적인 감독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경우 기업과 감사인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개혁으로 도입된 표준감사시간제와 내부회계관리제도 등이 기업에게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신뢰성 있는 재무제표 작성의 정착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해외 주요국가들과 비교할 때 아직도 회계사들의 시간당 감사보수는 크게 낮고 감사에 투입되는 시간도 적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신 외부감사법 시행 이후 기업·감사인 책임 커져

2018년 11월 신 외부감사법 시행 이후 회계기준을 위반한 기업과 회계법인에 대한 제재가 강화됐다.


고의에 의한 위반은 회계처리 기준 위반금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과징금 상한이 없어진 것이다. 중과실은 최대 15%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감사인에 대해서는 감사보수의 5배 이내에서 과징금 부과가 가능해졌다. 형사처벌의 경우 과거 징역 5년 또는 7년 이하에서 10년 이하로 강화됐고, 벌금액은 5000만~7000만원에서 이익 또는 회피손실액의 2~5배 이하로 변경됐다.

회계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상 변경된 금액이 1000억원(자산 1조원 이상 기업)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가중 처벌 조항도 두고 있다.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소송 시효도 기존 3년에서 8년으로 연장됐다.

기업의 평균수명이 15년인 점을 고려하면 기업 파산시 외부감사를 맡았던 회계사들은 손해배상 위험에 상당기간 노출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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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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