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비전 수립했는데 … 발표는 누가?

2021-07-26 11:27:02 게재

비전수립위원장 윤석열캠프 합류, 혼선

오-윤, 비공개만찬서도 불편한 속내여전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의욕적으로 수립한 '2030서울비전'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대응이 연기 사유로 꼽히지만 발표자 선정문제를 둘러싼 혼선이 숨은 이유로 꼽힌다.

지난 5월 서울시 비전2030위원회 발족식 모습. 오세훈 시장(가운데) 오른편에 이석준 위원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오 시장은 취임 한달여만인 지난 5월 3일 '서울비전 2030위원회'를 발족했다. 향후 10년 서울의 미래 청사진을 수립한다는 목표로 행정기관, 정책전문가 등 각계 인사 20여명으로 구성했다.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비전 전략 총괄역을 맡았다. 참가 인사 면면, 조직 구성 등을 볼 때 사실상 오 시장의 서울시 미래비전과 전략이 모두 담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달 20일로 예정된 비전수립 결과는 발표 시점이 무기한 연기됐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터지면서 그 대응이 급선무로 떠오른 게 표면적 이유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당초 오 시장은 완성된 서울비전2030 결과를 이석준 위원장과 함께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서울비전2030 수립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달 21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캠프에 정책총괄역으로 깜짝 영입됐다. 오 시장의 미래전략을 총괄한 사람이 야권의 대선후보 캠프에 좌장으로 옮겨간 형국이 됐다. 서울시는 당시 "7월 20일로 예정된 서울비전2030 발표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 위원장도 사임하지 않고 위원장 역할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오 시장측 고민이 깊어졌다. 당초 계획대로 이 위원장과 공동발표를 하자니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이 위원장이 공식 출범한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정책총괄역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윤 후보의 선관위 후보 등록을 대리하는 등 캠프 내 좌장역할이 재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의 겹치기 출연을 두고 오 시장측은 알려진 바와 달리 내심 불쾌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캠프 영입 당시, 이 위원장이 먼저 오 시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윤 전 총장도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지만 불편한 기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9일 윤 후보와 오 시장은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윤 후보 측은 회동 후 "이석준 위원장 영입 문제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만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후보측 발언으로 이 문제가 두 사람 사이에 그만큼 예민한 사안임이 드러난 셈이 됐다.

이석준 위원장 겹치기가 이토록 예민한 것은 정치지형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오 시장 차출론은 여권에 비해 후보군 진용이 불안한 야권에선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라며 "오 시장의 공약, 전략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잠재적 경쟁자인 윤 후보 측 정책총괄자로 가는 만큼 흔쾌히 양보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최재형 전 감사원장 서울시 방문은 풍경부터 달랐다. 오 시장 최측근인 강철원 민생특보가 서울시 문턱을 넘은 순간부터 정성껏 최 전 원장을 챙겼다. 두 사람 회동을 밖에서 대기하던 관계자는 "대화 내내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크게 들렸다"고 전했다. 최근 국민의힘에 조기 입당한 최 전 원장은 이른바 '오세훈 웨이(way)'를 모델로 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대선을 준비하던 오 시장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한 '자강론'에 힘입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경선에 참여했고 정치권 예상과 달리 당 안의 나경원, 당 밖의 안철수, 여당의 박영선 후보를 차례로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위원장 위치가 바뀐 만큼 오 시장과 함께 서울비전을 발표할 새로운 얼굴을 물색 중"이라며 "위원장의 사실상 공석으로 인해 발표자 선정에 애를 먹고있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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