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속 필수노동자

열악한 근무조건에 재해·과로 위험 '수두룩'

2021-07-27 11:09:56 게재

코로나19로 비대면 확산, 사회기능 유지 역할 부각 … 필수노동자 보호법 제정 등 지원 노력

필수노동자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안전,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상황에서도 원격업무가 불가능한 직종에서 필수적인 업무를 제공하는 종사자를 '최전방 종사자'로 지칭하고 식품 가공·배달, 보건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핵심 종사자'로 정의한다. 영국에서는 의료·사회복지, 교육·보육, 핵심 공공서비스, 식품·필수품, 공공안전 및 국가안보, 교통(운송), 공익사업 종사자를 필수노동자로 분류했다. 미국은 에너지, 보육, 농업, 식품 제조, 필수소매업, 필수사업(에너지, 기반시설 등), 교통(운송) 종사자를 필수노동자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필수노동자 보호법)에서 '재난이 발생한 경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 및 사회 기능 유지에 필요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필수노동자로 정의한다. 필수노동자는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 비대면이 확산되는 가운데 대두됐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는 저임금, 업무상 재해 위험,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 등 열악한 근무조건은 물론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요양노동자 현장 고발│4월 2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주최로 요양노동자 노동현장 고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필수노동자인 요양노동자들이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 없이 노인들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는다. 기술 발전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시행한다. 하지만 직종 특성상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 속에도 계속 출근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필수노동자다.

필수노동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감염이다. 의료·돌봄 등 직종은 대면·접촉 서비스를 중단할 수 없는 업무 특성상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지난해 대구, 경기 고양 등의 병원과 요양병원 집단감염과 그리고 이로 인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가 대표적 사례다. 콜센터 물류센터 등 밀집작업이 불가피한 사업장의 경우 노동자 간 집단감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서울 구로 콜센터와 부천 물류센터 등의 집단감염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콜센터 직원은 업무량이 폭증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상담을 하다 보니 비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인 줄 알지만 마스크 사용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마스크를 쓰고 상담하면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고객의 불만이 들어오고 이는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음압구역에서 검체채취'│지난 22일 광주 동구보건소 상시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음압공간인 검체채취실에서 시민의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근골격계질환 등에 시달려 = 필수노동자들은 업무상 재해에도 많이 노출된다. 근골격계 질환이 대표적이다. 근골격계질환은 △반복적인 동작, 부적절한 작업 자세, 무리한 힘의 사용, 날카로운 면과의 신체 접촉, 진동 및 온도 등의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건강장해로 목 어깨 허리 팔다리의 신경근육 및 그 주변 신체조직 등에 나타난다.

근골격계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직종으로는 돌봄, 특히 요양보호사가 꼽힌다. 요양보호사는 2008년 7월 1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 이후 급격히 늘었다. 요양원·공동생활가정·주·야간보호·방문요양·치매안심센터 등 노인장기요양기관 2만4500여개소가 운영 중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요양보호사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을 돌본다. 요양보호사는 90% 이상이 여성이고 이 중 80% 정도가 40대가 넘은 연령층이다.

요양보호사의 근골격계 질환 위험성은 심각하다. 근골격계 질환은 목욕(침상 목욕), 침상에서 머리 감기기, 기저귀 교체, 욕창관리 등 부자연스런 자세로 반복해서 작업을 하다가 많이 발행한다.

또 환자를 부축해 휠체어·변기 또는 이동식 베드로 옮길 때, 휠체어로 경사로를 이동할 때, 침상에서 체위변경 등 무리하게 힘을 써야 하는 상황도 원인이 된다. 요양보호사 98% 이상이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택배기사, 이륜차 배달원, 환경미화원, 의료기관 노동자 등도 인력부족, 불명확한 업무범위 등으로 장시간 격무에 과로 상태다. 이런 노동여건은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장시간 근무하다 쓰러진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공통원인은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뇌·심혈관계 질환은 과로사를 초래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특히 교대근무를 비롯한 야간근무가 뇌·심혈관계 질환의 주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 산안법 사각지대 존재 = 필수노동자 대부분이 감정노동 직업군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강도 높은 감정노동과 업무량 증가로 고통을 겪는다.

보건의료 직종의 경우 코로나19 검체(검사대상물) 채취를 비롯해 결과 통보, 역학조사 등의 업무 속에서 끊임없는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특히 검체 채취시에는 폭언과 함께 침을 뱉거나 손찌검을 하고 손을 올리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한다.

택배노동자들도 물량 급증으로 배송이 늦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짜증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2018년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감정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과 휴게시간, 치료·심리상담, 고객응대 업무 매뉴얼 제작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간한 '감정노동 제도화 현상과 개선과제 검토'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휴게공간 활용(53.4%), 휴식시간 활용(49.9%), 전담자 배치(49.3%), 건강관리(44.2%) 등으로 이행률이 낮았다.

노조가 있는 민간 사업장(보건의료·사무금융·유통) 조사에서는 충분한 휴게시설을 제공(9.2%)하거나 회복프로그램(13.8%)을 운용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보호조치 비율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감정노동 보호조치가 확산·정착하기 위해 공공부문에 정부 개입을 높이고, 민간부문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고용안정·처우개선도 숙제 = 정부도 법 개정을 통해 필수노동자 지원을 강화하려고 나섰다. 지난 5월 국회는 필수노동자 보호법을 가결했다.

법은 그동안 모호했던 '필수업무'와 '필수업무 종사자'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했다. 또 재난이 발생한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필수노동자에 대한 보호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했다. 특히 인력 부족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이들의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하지만 노동현장 일각에서는 필수노동자에 대한 책임만 강조될 뿐 실질적인 지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노동자 보호법이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같은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보호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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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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