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겉으론 신탁통치 주장 … 실제론 한반도 분할 추진

2021-09-02 00:00:01 게재

1943년을 전후해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자국 안보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 국가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상대국으로 넘어가면 패권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해지는 전략적 이익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똑같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원하면서도 미국은 한반도 분단을, 소련은 통일을 선호했다. 소련은 일제 35년 동안 독립운동으로 조선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인기가 높고,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통일 한반도가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통일을 추구했다. 미국도 이같이 생각했다. 미국이 분단을 원했던 것은 분할점령을 통해서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정국가가 한반도 독점 못하게 해야 = 권영근 박사는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보가 4가지 원칙 하에 추진됐다고 분석했다.

첫째, 특정국가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자신도 포함된다. 미국이 한반도를 독자적으로 점령하는 경우, 일정기간 뒤 한반도를 단일 국가로 독립시켜 주어야만 했을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에 단일국가가 출현하는 경우 이 국가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이었다.

주권국가인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자 하는 경우 적어도 미국과 통일한국이 동맹관계가 돼야 하는데 동맹은 공동의 적을 전제로 한다. 당시 미국이 소련을 적국으로 생각한 반면, 많은 조선인들은 독립운동과정에서의 인연으로 소련을 우호적으로 바라보았다. 이는 통일한국과 미국이 소련을 겨냥해 동맹을 체결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시 미국은 전후 중국과 일본이 자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될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통일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킬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이 한반도 전체의 점령을 추구하지 않은 이유는, 오늘날에도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내심 원치 않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 주요 이유는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가 '전략적 이익'에 해당하는 지역이란 점에서 결코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주한미군이 강제 철수당하면 통일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오늘날 미국은 한국이 지난 70여년 동안 자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미국을 멀리한 채 중국과 가까워질 가능성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주의자였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미국이 한반도 모든 지역의 점령을 우려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 즉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는 임시정부를 5년 동안 운영한 후 한반도를 통일시킬 것이란 결정을 하지 군정장관이 반대했던 주요 이유 또한 통일한국이 소련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모스크바3상회의 당시 소련의 조선독립 열망을 한반도를 자국의 영향권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성격으로 생각했다.

◆한반도 분할 점령, 구두로 합의한 이유 = 둘째, 조선의 특정세력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만 했다. 특정세력이 한반도를 독점하는 경우 통일한국의 이념적 성향 등의 이유로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전후 북한지역을 공산주의자가, 남한지역을 공산주의자와 견원지간인 친일파들이 주도하게 했던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셋째,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내내 지속적으로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4개국 신탁통치 이후 한반도를 독립시켜 줄 것처럼 주장해야만 했다. 이처럼 해야만 2차 세계대전 수행과정에서 소련과 중국 및 영국의 도움을 얻을 수 있고, 미국이 전후 한반도에 발을 디뎌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전후 적정 순간에 한반도를 독립시켜주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야만 조선인들이 적어도 반미감정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미군의 장기 주둔을 보장해 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이 처음부터 한반도 분단을 추구했음을 조선인들이 알게 되는 경우 미군의 장기 주둔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넷째,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비밀로 해야 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한 후 남쪽지역을 미군이 점령해야만 아태지역을 겨냥한 소련의 세력팽창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입장에서는 이같은 사실은 무덤까지 비밀로 갖고 가야할 성격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많은 조선인들이 반미감정을 표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카이로, 테헤란, 얄타, 포츠담에서 지속적으로 신탁통치 운운하면서 이면에서는 한반도를 소련과 분할 점령하는 계획을 발전시킨 후 이행했던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들 계획을 소련과 문서가 아니고 구두로 합의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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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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