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수상 주재하는 노사정 '자동차정상회담'

2021-09-07 11:48:11 게재

산업전환과 독일 노사정의 노력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독일은 전통적으로 자동차산업의 강국이다. BMW 폭스바겐 다임러 등 독일의 빅3는 아직도 세계시장에서 건재하다. 특히 프리미엄 시장에서 이들의 위치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독일의 노사정은 지금 커다란 위기의식 속에서 새로운 혁신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경쟁우위를 점했던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차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독일정부는 중앙과 지역에서 관련 주체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정책적 협의체를 운영한다. 먼저 2019년부터 연방수상이 주재하는 '자동차정상회담'이 있다. 여기에는 노사정 대표와 전문가들이 모여 자동차산업의 전환과 고용을 위해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정책적 과제들에 대해 논의한다.

또한 2020년 경제부에서는 전환기에 지역과 사업장의 구체적인 문제점 및 대안을 찾기 위해 '전환 대화'라는 소통기구를 운영해 중요한 정책적 이슈들을 발견하고 지원책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18년에는 6개 전문분과로 구성된 '국가 미래 모빌리티 플랫폼'을 설립해 환경, 교통, 고용, 동력 및 연료 기술, 에너지 등 종합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새로운 모빌리티 세계를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중요한 지역에서는 '자동차경제 전략대화'라는 사회적 협의체를 운영한다. 여기서는 특히 중소부품사들의 혁신활동을 지원하면서 산업의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의 문제 등 갈등 요소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강구한다. 회사는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를 위한 역량과 경쟁력 확보에 주력한다. 예컨대 폭스바겐은 그동안 뒤쳐져 있던 소프트웨어, 전기차 배터리 및 모터를 직접 개발·생산해 고용과 경쟁력을 담보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기존의 조직과 공장을 혁신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러한 전환전략과 과정은 사업장평의회와 미래협약을 체결해 노사가 같이 만들어간다. 전기차로 줄어드는 고용에 대한 대응책으로 전환배치, 직무교육, 고령자 파트타임 등 다양한 방안을 공동으로 검토하고 시행한다. 금속노조는 전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앞서 언급한 모든 정책협의체에 참여해 노동자의 이해와 전환을 위한 문제점과 지원책에 대해 논의한다. 특히 고용안정과 직무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훈련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각종 협의체에서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9년에는 2000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환지도'를 그려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회사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거의 절반 정도가 전환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실망한 금속노조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각 사업장에서 '공정한 전환'을 위한 미래협약을 맺도록 촉구했다.

최근 유럽연합의 '핏포55'(Fit for 55)가 공표되자 금속노조 위원장은 "목표는 세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하면서 그 목표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사자들이 참여해 누구도 희생되지 않게 전환과정을 민주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날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의 발전모델을 '라인 모델'이라 일컫기도 한다. 핵심은 공동결정 등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데 있다.

지금 산업적 대전환의 시기에 라인 모델은 다시 힘을 발휘한다.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모빌리티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참여한다. 이래야 이해관계가 조절되고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해진다. 상황과 제도적 기반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참여를 통해 조절되고 정의로운 한국형 전환모델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공정한 노동전환"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