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데이트폭력 사망사건 피의자 구속

데이트폭력으로 하루 평균 27명 검거

2021-09-16 12:08:41 게재

2019년 기준, 살인 10건·살인미수 25건 … 개인문제 치부로 살인 등 피해 키워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두 번째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끝에 결국 구속됐다.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최유신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5분 동안 상해치사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오후 4시 50분쯤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심사 마친 '데이트폭력' 30대│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하던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앞서 A씨는 7월 25일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의 여자친구인 20대 여성 B씨와 말다툼 하던 중 B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A씨는 119에 "B씨가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서 넘어져 다쳤다"는 취지의 거짓 신고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B씨는 약 3주 동안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결국 사망했다. 피해자 측은 A씨가 '왜 연인관계라는 것을 주변에 알렸나'라며 화를 내면서 피해자를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경찰은 7월 27일 상해 혐의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가능성이 낮다"며 기각했다. 이후 B씨가 숨지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와 의료진 소견을 토대로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했다.

◆데이트폭력 신고 증가세 =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대표적인 데이트 폭력으로 보고 있다.

데이트폭력은 연인 사이에서 나타나는 폭력이나 위협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는 폭력적인 행위를 암시하면서 정신적인 압박을 가해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나 언어폭력 등 비물리적인 행위도 포함된다.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의 특징상 지속적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재범률 또한 높은 편이다. 특히 사적인 문제로 생각해 가볍게 넘어가는 인식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매년 데이트폭력 신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경찰청과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통계와 조사를 근거로 펴낸 'KOSTAT 통계플러스' 2020년 가을호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7년 1만4136건에서 2019년 1만9940건으로 41.1% 증가했다. 데이트폭력 검거 건수도 매년 늘어 2019년 9858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27건의 데이트폭력이 발생한 것이다.

데이트폭력의 유형은 살인에서부터 성폭력, 폭행·상해, 경범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2019년 검거 건수를 범죄 유형별로 보면 폭행·상해가 7003명(71.0%)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경범죄 등 기타 1669명(16.9%) 체포·감금·협박 1067명 (10.8%), 성폭력 84명(0.8%), 살인미수 25명(0.3%), 살인 10명(0.1%) 등의 순이다.

가해자 연령별 현황(2018년 기준)을 살펴보면 20대가 35.3%로 가장 많았다. 30대 26.2%, 40대 18.6%, 50대 12.9%, 60대 이상 3.8%, 10대 3.2% 등의 순이었다.

연령대별 데이트폭력 추이를 살펴보면 20대 가해자가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2018년 경기도의 만19~69세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 데이트 관계에서 연인에게 최소 1번 이상 폭력을 경험한 경우는 과반수가 넘는 54.9%로 나타났다. 남자 54.5%, 여자 55.4%로 여성이 더 높았다.

데이트폭력 후유증을 겪는 비중은 여성이 남성보다 조금 더 높았다. 증상별 남녀 비율은 사회생활 및 대인관계 문제(남성 11.0% 여성 12.5%), 알코올 중독(남성 2.6% 여성 2.8%), 섭식장애(남성 3.5% 여성 8.7%), 정신적 고통(남성 22.9% 여성 30.6%)이었다.

정혜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여성정책연구팀장은 "한국 사회에서는 데이트폭력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인 문제로 다루어져 온 경향이 컸다"면서 "따라서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이며 젠더폭력이라는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며, 데이트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상적으로 성인지 감수성과 폭력 허용적 문화의 개선이 생활화돼야만 데이트폭력을 방지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피해자·가해자 분리도 쉽지 않다 =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이 현행법에 정의돼 있지 않아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데이트 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 유형에 따라 형법 등으로 처벌한다.

문제는 데이트 폭력 범죄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폭행의 경우 형법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이다.

데이트 폭력은 친밀한 관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여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집 주소 및 인적사항, 주변 지인 등을 아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고를 하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 지인들의 설득 등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데이트폭력 범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폭행의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벌금 등을 선고받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도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별법(가정폭력처벌법)처럼 법적으로 피해자 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경찰 직권으로 접근금지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데이트폭력의 경우 따로 관련된 규정이 없어 법원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7년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가정폭력처벌법에 데이트 폭력 범죄를 추가하는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해 표창원 전 의원이 '데이트 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행위 방지 및 피해자보호법'을 대표 발의했다. 표 전 의원 법안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사전에 보호하고 가해행위가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다.

현재는 윤영석 의원(국민의힘)이 대표 발의한 '데이트폭력등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윤 의원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계류돼 있다.

◆선진국에선 가중처벌 = 국회 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등은 가정폭력의 범주에 '데이트 관계' 또는 '서로 친밀한 개인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게도 가정폭력 피해자가 받는 보호 조치를 제공한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의무 체포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은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강압적인 통제'를 가정폭력에 포함해 2016년부터 최대 5년 형이 선고되도록 법을 개정했다. 더 나아가 지난해에는 '경제적인 통제'까지 가정폭력에 포함했다. 특히 2014년부터는 폭력 위험이 있는 연인의 전과 기록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클레어법'도 시행 중이다.

일본의 경우도 2013년부터 교제 상대도 가정폭력 가해자와 같은 법률의 적용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마포 데이트폭력 사망사건과 관련해 "데이트폭력으로 여성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정부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피해자 신변보호 강화, 피해자 지원체계 마련을 약속했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험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밀한 관계 내 폭력 발생 시 가중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친밀한 관계의 특성을 고려해 반복성·지속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수사해 가해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면서 "여성폭력에 대한 정부 정책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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