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차별 없애기

"정신장애인 대상 지역돌봄체계 만들어야"

2021-10-08 11:26:36 게재

정신병원 입퇴원 반복, 복지서비스도 없어 … "지역에서 생활 가능한 환경 절실"

장애인이면서 정신질환자인 정신장애인은 다른 장애인처럼 의학적 치료와 돌봄서비스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은 복지의 대상이 아닌 병원 입원과 약물치료의 대상으로만 삼는 국가 정책 탓에 복지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복지서비스가 극도로 부족해 지역사회에 나갈 수 없어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가족 돌봄이 어려운 경우 시설에서 5년 있다가 갈 곳이 없으면 병원으로 들어가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인권단체 등이 정신장애인의 권익 보장하는 법제 정비와 지역사회돌봄이 가능한 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신장애인들이 차별 없는 제도 속에서 지역에서 온전히 생활할 수 있도록 여러 사례 속에서 그 대안을 찾아보았다.

2019년 금화자연휴양림에서 가을캠프를 하고 있는 한사랑어린이집 아이들. 장애전담어린이집인 한사랑어린이집에는 비장애유아들도 함께 다니고 있다. 사진 한사랑어린이집 제공

 


20대부터 30년간 부랑인시설 정신병원 정신요양시설에 거주하다가 지난 7월 지역사회에서 집을 얻어 생활하고 있는 서울 봉천동 곽 모씨.

곽씨는 시설과 병원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주거나 시설 바깥 생활에 어떻게 적응할까 걱정했다. 그러나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를 통해 원룸을 지원받고 전입신고 처리나 핸드폰 개설 등을 도움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곽씨는 "혼자 사는 데 걱정이 있었지만 센터의 도움으로 이제는 염려하지 않는다. 하지 못했던 글-문학 등 공부를 하고 싶다"며 "시설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런 센터가 전국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신병원 퇴원 후 공동생활가정에서 2년간 저축하며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첨돼 자립생활을 시작한 서울 가양동 이 모씨.

이씨는 꾸준한 취업활동을 이어가면서 최근 동료상담-지원가로 활동 중이다. 공동생활가정에서 나와 5년 넘게 편의점에서 주당 2∼3일 하루 3시간 물품 정리-청소 등을 하고 주5일 하루 3시간 병원 서류를 관리하는 보조업무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저 또한 당사자라서 정신장애인과 공감이 쉽게 형성돼 그들에게 정보제공이나 도움을 주는 상담과 설명을 하는 데 어렵지 않다"며 "정신장애인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정서적 지지가 중요하다. 동료지원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사례에서 정신장애인이 시설이나 병원을 나와 지역사회 지지자원의 도움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서적 공감과 지지 중요 =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최근 3년 동안 조현병 등 정신장애인에게 '확대가사지원서비스'(화성시 시범사업)를 진행중이다.

이 란 화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밥이나 설거지조차 혼자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시설에 갖혀 수용생활을 하다보니 근육이 약해져 사소한 일상활동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며 "일상생활을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적응하면 서비스 지원자들과 이웃처럼 서로 도와주며 어울릴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이 이사는 "탈시설 과정에 치료작업장 개념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며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왜곡된 낙인이 찍혀 있다. 그들을 방치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약하고 무기력한 신체건강 상태가 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연대 출범 = 정신장애인은 정신질환으로 정신 기능에 이상이 생겨 일상생활에 지장을 일으킨다.

장애인복지법상 조현병, 분열형 정동장애, 양극성 장애, 반복성 우울장애 등 만성정신질환자가 해당된다. 이 때문에 평생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동시에 다른 장애인처럼 돌봄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신장애계 안팎에서는 우리나라 정신장애인들이 병원입원과 약물치료에 치우친 관리를 받고 있고, 온전한 건강관리와 돌봄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남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전국 30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5일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철폐를 위한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연대'를 출범시키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폐지 운동에 나섰다.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연대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은 비인간적인 강제입원과 강제치료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며 "장애인복지가 발전하고 복지예산도 늘어났지만 정신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의해 법 적용대상에서 배제됨에 따라 복지서비스에서도 소외돼 있다"고 주장했다.

황운성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 8월 초 발표된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에서도 정신장애인은 배제됐다"며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기본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이사장은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좋은 사례들이 있다"며 "비장애인과 더불어 생활하는 다양한 행태를 연구하고 좋은 사례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에서 비장애인과 생활 = 대구 안심마을에서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돌봄을 받고 일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안심마을에서 일상화돼 있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지활동에서 정신장애인의 지지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한사랑어린이집은 장애전담 어린이집인데 여기엔 비장애유아 16여명도 함께 다니고 있다. 대부분 생태 중심, 마을살이 활동으로 교육활동이 이루어진다. 동네 오일장이 열리면 같이 장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지칠 때까지 뛰어놀고 지하철을 타고 대구 시내도 다녀온다. 안심마을은 온 마을이 교육현장이다.

안심마을에는 발달장애인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 카페 로컬푸드매장 방과후학교 식당 밑반찬가게 책방 등이다. 이곳들은 모두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마을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발달장애인들은 협동조합에서 일한다. 마을에 협동조합 하나가 생길 때마다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가 생긴다.

이들을 지원하는 곳은 사회적협동조합 '사람이야기'다. 카페 3곳을 직영하면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일한다. 신규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급여와 근무조건 등을 조율하고 인력배치도 담당한다. 발달장애인은 특성상 일을 지긋하게 못한다. '농땡이를 피우거나 사고를 쳤을 때' 해결사 역할도 한다.

발달장애인들의 거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9월 비장애인과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를 만들었다.

협동조합 공터가 운영하는 이곳에는 발달장애인 4명과 비장애인 3명이 함께 산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외롭게 지내지 말고 사생활이 보장되며 재미나게 살자고 만들었다고 한다. 이외 공동생활가정과 자립생활주택 등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마을에 축제나 행사가 열리면 기획부터 진행까지 전과정에 참여한다. 자연스럽게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이다.

김정화 사회복지법인 한사랑 사무국장은 "정신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생활공간 속에서 살다보면 정신장애보다 사람이 보인다"며 "안심마을처럼 함께 하는 일자리와 놀거리가 많아 늘 시끌벅적한 마을공동체가 전국 곳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우라카와의 '베델의 집' = 일본 훗가이도 우라카와라는 작은 어촌마을에는 정신장애인 대안공동체로 알려진 세계적인 모델이 있다. 베델의 집 사례이다.

우라카와 마을에는 150여명의 정신장애인이 살고 있다. 지역사회에는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환청이나 망상에 관해 자유롭게 말하고 힘들 때는 언제든지 퇴근할 수 있는 작업장이 있다. 임금은 자신이 보고한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생산성과 관계없이 배분된다.

외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누군가 생일을 맞으면 함께 모여서 축하하고 식사하는 부라부라카페가 있다. 여기에서는 정신장애인들로 구성된 직원들이 서빙을 하고 당사자밴드가 대가를 받고 연주를 한다.

이 마을엔 '당사자연구'라는 독특한 집단프로그램이 있다. 당사자 스스로가 정신장애 상태에서 비롯되는 사고와 정서, 행동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패턴을 분석하고 문제를 줄여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그리고 함께' 찾아간다.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전공 교수는 '일본 베델의 집은 정신장애인 대안공동체인가?'라는 논문(2018)에서 "베델의 집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담금을 토대로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모범적인 사회복지프로그램"이라고 규정하고 "우리나라도 정신장애인 서비스를 시설 중심에서 소규모 주거와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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