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과징금 소송' 승소하고도 울상

2021-10-27 12:28:56 게재

법원 "운항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은 위법"

인천~홍콩노선서 무허가 위험물 운송

제주항공이 위험물품을 항공기 화물칸에 싣고 운송해 국토해양부로부터 거액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는데, 소송을 통해 이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국토부의 과징금 처분이 위법하고, 아예 운항정지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만일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국토부는 제주항공에 대해 과징금이 아닌 운항정지로 재처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7부(김국현 부장판사)는 제주항공이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청구한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과징금 12억원 부과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과징금 처분이 과도한 것이 아닌 국토부가 법령에 있는 처분보다 낮은 처분을 한 게 문제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관련법상) 이 사건 처분은 원고에게 운항정지를 명하는 대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부과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밝혔다.

◆"과징금 요건 충족 안해" = 제주항공은 2018년 1월부터 4월까지 인천~홍콩 노선에서 20차례에 걸쳐 리튬이온배터리(ELI) 또는 리튬메탈배터리(ELM)가 들어있는 장비 546개를 운송했다. 항공안전법상 ELI와 ELM은 모두 위험물로 분류돼 있어 국토부 위험물감독관의 허가를 받아야만 운송할 수 있다.

리튬배터리가 들어있는 장비는 개인사용 목적 운반에 한해 위탁수하물 운송이 가능하지만 되도록 휴대수하물로 운송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1회 최대 66개의 리튬배터리 장착장비를 화물 위탁운송하기도 했다.

국토부는 제주항공의 위험물 운송사실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국내 8개 항공운송사업자에 대해 긴급 현장 점검에 나섰다. 공교롭게 제주항공 외에 다른 항공사들의 위험물 취급 관련 위반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항공안전법에는 항공운송사업자가 허가를 받지 않고 위험물을 운송한 경우 △운항증명 취소 △6개월 이내 운항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운항을 정지해 항공기 이용자 등에게 심한 불편을 주거나 공익을 해칠 경우에는 100억원 이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제주항공에 과징금 90억원 부과 처분을 했다. 제주항공은 영업정지를 피했지만 오히려 반발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를 찾아 과징금 처분 취소를 받아냈고, 국토부는 1년 뒤 12억원으로 낮추는 처분을 했다.

재판부는 "위법 행위를 한 업자에 정당한 제재처분은 산업과 행정기관 신뢰를 제고할 수 있어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과징금 부과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위험물인지 몰랐다"= 제주항공으로서는 과징금을 내지 않아도 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운송장 등에 위험물인지 알 수 있는 제품명과 코드명이 있는데도 위험물인지 몰랐다거나 정부의 공문서가 알아보기 힘들어 무효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수백명의 생명을 운송하는 항공운수사업자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제주항공은 "문제 화물이 위험물인지 법령이 명확하지 않고, 위험물 표찰도 필요로 하지 않아 위험물인지 알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화물 운송장에는 '리튬이온배터리' 또는 '리튬메탈배터리'로 기재돼 있고, 화물적하목록에는 'ELI', 'ELM'으로 표기돼 있었다. 'ELI', 'ELM'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국제기술지침 포장지침에 따라 위험물로 취급되는 '리튬이온배터리' '리튬메탈배터리'의 코드다.

재판부는 "제주항공이 위험물 여부를 알기 어려웠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어 제주항공은 "ICAO의 위험물 안전운송기술지침에 있는 포장지침을 준수할 경우 국토부의 추가 요건을 충족할 필요가 없다"며 "문제가 된 장비들은 위험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항공안전법의 시행규칙으로는 어떤 물건이 위험물인지 알기 어렵다" "국토부의 공문서는 국어기본법에도 위반되는 것으로 무효"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물론 재판부는 항공안전법의 도입취지와 국제조약 등을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제주항공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항공안전법은 문제가 된 화물을 위험물로 규정하고 있다"며 "국제 지침을 이유로 위험물 항공기 운송에 국토부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오승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