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성 검사 구속영장 또 기각

공수처 '고발 사주 의혹' 수사 난항

2021-12-03 12:44:05 게재

법원 "손준성 구속 필요성 소명 불충분", '윗선' 수사도 불투명 … 수사 막다른 길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또 기각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막다른 길에 몰렸다. 손준성 검사에 대한 신병확보가 잇달아 불발되면서 윗선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도 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구체적 증거 제시 못한 듯 = 서보민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손 검사에 대한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영장 기각에 구치소 나서는 손준성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3일 새벽 영장이 기각돼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서 부장판사는 이날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대한 소명은 충분하지 않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10월 26일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사유인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와 이번 기각 사유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법원은 공수처의 추가 수사에 유의미한 진전이 없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공수처는 2차 영장청구에서 검사 2명 등 3명의 전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직원을 고발장 작성·전달자로 실명 기재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기각'이라는 결과에 비춰 공수처는 영장청구서 내용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10월 20일 체포영장, 사흘 뒤 청구한 1차 구속영장에 이어 이번 2차 구속영장까지 공수처는 연거푸 3번에 걸쳐 법원의 기각 결정을 받았고, 손 검사에 대한 신병 확보 시도는 실패했다.

◆고발장 최초 전달자만 확인 = 손 검사는 그동안 제보자 조성은씨와 김 웅 국민의힘 의원의 텔레그램 대화상 고발장 최초 전달자로 지목돼 왔다.

김 의원은 지난해 4월 3일 제보자 조씨에게 고발장을 전달하기 전후로 두 차례 전화해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일단 만들어서 보낸다" 등 고발장 작성에 배후가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즈음 조씨와 김 의원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에는 '손준성 보냄'으로 전달자가 찍힌 메시지를 통해 문제의 고발장 파일이 전송된 사실이 확인됐다.

공수처는 조씨의 휴대전화 등을 포렌식 한 결과 '손준성 보냄'의 손준성이 '검사 손준성'이라는 점을 파악했다. 하지만 중간에 제3의 인물 여러 명을 거쳐 파일이 전달되더라도 최초 전달자의 이름만 꼬리표처럼 남는 텔레그램의 특성상 손 검사가 텔레그램 상의 고발장 최초 전달자라는 사실까지만 확인했다.

하지만 이날 영장이 기각되면서 공수처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관여 정황을 입증할 수 있는 증언이나 증거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손 검사의 직권남용 혐의를 파악할 단서인 '고발장 작성자'도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공수처, 수사 동력 상실 = 이로써 공수처의 고발 사주 수사는 나아갈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원이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또다시 기각함에 따라 공수처가 손 검사와 공범관계로 의심했던 윤석열 후보에 대한 수사도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손 검사의 혐의 입증은 김 웅 의원 등 정치권과 윤 후보 등 검찰 고위층으로 수사가 나아가는 관문이었다. 하지만, 공수처가 약 3개월 동안 시도했음에도 그 문을 열지 못했다.

손 검사뿐 아니라 윤 후보, 김 의원 등 함께 입건된 피의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가 막다른 길에 몰린 셈이다.

공수처는 영장 기각 뒤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혐의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거듭된 사정을 고려한다면 공수처가 세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윤 후보 수사도 못하고 불기소 처분 가능성 = 현재까지 파악한 내용을 토대로 손 검사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심을 모았던 윤 후보에 대해서는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불기소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손 검사의 혐의를 소명하는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황에서 윤 후보로까지 수사가 뻗어나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공수처의 2차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1차 청구서 때 손 검사가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 간부와 공모했다'고 기재돼 있던 내용이 빠져 있다. 윤 후보의 공모 여부를 밝히는 단계까지는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 논란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야권 일각에서 나왔던 공수처 폐지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출범 1년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수처가 최대 위기를 맞은 듯한 모양새다.

손 검사는 이날 영장 기각 뒤 서울구치소에서 나서며 "거듭된 공수처의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선일 · 오승완 기자 · 연합뉴스 sikim@naeil.com
김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