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백남준·에일리 전시·공연 감상

2022-01-13 12:27:58 게재

노원구 주민들은 '문화로 힐링'

세계수준 예술작품, 집 앞으로

"코로나 때문에 주민들만 사전 예약을 받았는데 현장에서 입장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다른 지역에서도 산책이나 운동하러 많이들 찾는 곳이거든요."

서울 노원구 월계동 주민 장혜경(54)씨에게 지난 연말 공릉동 화랑대 철도공원 풍경이 생생하다. 2년만에 경춘선숲길 음악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경춘선숲길 갤러리를 찾은 시민들이 로보트 태권브이 등 만화 속 주인공 등을 만나고 있다. 사진 노원구 제공


중장년층에 친숙한 가수 송창식 을 비롯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유명한 에일리 등이 무대에 섰다. 2회까지 관객이 7000여명에 달했는데 990명으로 제한하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장씨는 "문화예술에 대한 주민들 눈높이가 높아지고 욕구가 많은데 그에 발맞춘 공연이나 전시가 많아졌다"며 "멀리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까지 가지 않고도 집 가까이서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노원구가 민선 7기 들어 주민들 눈높이에 맞는 공연과 전시를 대폭 확대, 호응이 크다. '자연과 문화'를 매개로 한 힐링도시를 지향하는 노원은 불암산 영축산 등 천혜의 자원을 쉼공간으로 탈바꿈시켰고 그간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문화예술 향유기회를 늘려가고 있다.

특히 국내 정상급,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는 예술작품을 동네에서 즐길 수 있도록 주력한다. 멀리 도심까지 출퇴근하며 일상에 지친 주민들이 일과 후나 주말만이라도 지역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재충전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노원구 관계자는 "지역 곳곳에 재미와 감동을 심자는 게 문화정책의 핵심"이라며 "이른바 '변두리'에서도 예술성 있고 격조 높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5월까지 중계동 북서울미술관에 머무는 영국 테이트미술관 소장 작품전이 대표적이다. 모네와 칸딘스키 등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들을 보유한 테이트미술관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기획전시를 하는데 국립미술관은 물론 서울시립미술관 본관도 아닌 노원을 택했다. 오승록 구청장 등이 서울시의회와 협력해 예산을 확보한 뒤 북서울미술관과 협업한 성과물이다.

서울 중심부가 아닌데 관객이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2019년 같은 공간에서 열렀던 한국근현대명화전 '근대의 꿈'에 보였던 주민들 관심이 명쾌한 답이 됐다.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내건 전시회를 14만명 가까이 찾았다.

주민들 일상과 닿아있는 경춘선숲길과 철도공원은 일찌감치 열린 공연장이자 전시실로 자리매김했다. 경춘선숲길 음악회가 정기적으로 열리는가 하면 '아시아의 탈(가면)전' '백남준 판화전'에 이어 7080세대에게 친숙한 '로보트 태권브이'를 매개로 한 '우리 만화 이야기'가 현재 진행형이다. 태권브이 계보를 잇는 '철인 007' '똘이장군' 등 등장인물을 축소한 모형(피규어) 100여점이 기성세대는 물론 아이들 눈길까지 사로잡는다.

불암산 힐링타운 내 나비정원, 당현천 산책길, 동일로 등 주요 거리와 근린공원에서도 노원문화예술회관 못지않은 기획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조도연 서양화가는 "등축제 탈축제 등 규모가 큰 볼거리에 경춘선숲길 나비정원 등 숲길을 걷다가, 등·하산길에 들를 수 있는 전시까지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설이 잘 갖춰진 공공미술관이 지역 예술가나 주민들과 보다 소통하고 그 욕구를 반영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노원구는 인근 도봉구에 들어설 창동 아레나까지 연계해 주민들이 생활권 안에서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한 소통을 이어갈 계획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주민들이 지역에서도 수준높은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주민들이 더욱 가깝게 예술을 즐기며 일상에 쉼표를 찍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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