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최하위" … 히타치는 16% 향상

2022-01-19 11:38:55 게재

일본, 한국에도 뒤처진 2류국가 전락 위기감 … 디지털 혁신에 목매는 정부·기업

고도경제성장을 주도한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으로 이론과 현장에 모두 밝은 것으로 알려진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가 최근 일본의 현실을 개탄하는 글을 잇따라 내놓아 화제다.

노구치 교수는 6일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에 '일본은 선진국에서 탈락 직전, 2022년은 변화의 기로'라는 기고에서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최하위로 한국에도 뒤처진다"고 주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 "히타치제작소가 재택근무를 통해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16% 높였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재택근무로 성과를 중시하는 직장내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기획기사를 내놨다. 최근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국정지표로 내세운 '새로운 자본주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기초한 '임금인상론'이 노동생산성 논란으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기시다 총리가 불붙인 생산성 논란

기시다정권은 지난해 10월 출범과 함께 임금인상을 적극 내세웠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기자회견에서 "모든 수단을 강구해 기업이 임금을 올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법 개정안을 통해 총급여를 전년도에 비해 3% 이상 늘리는 대기업과 1.5% 이상 인상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경감하는 대책 등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간호사와 보육교사 등 공공부문에서부터 3% 인상을 주도하겠다고 했다. 경단련 등 기업에도 임금인상을 적극 주문했다. 경제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노동생산성의 향상 없는 임금인상은 단기적인 처방에 그친다고 강조한다. "이번에는 세제를 통해 우대를 받는다고 해도 일과성으로 끝나면 공염불에 그친다."(사쿠라다 켄코 경제동우회 대표간사)

산케이신문은 지난해 마지막 날 '생산성 세계 최하위 일본이 국력의 하락을 막는 열쇠는'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일본은 기업의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인재가 적다"면서 "우수한 외국인이 일본에 일하러 올 여건도 정비돼 있지 않고, 여성 인재의 활용도 생산성 높은 업무에서 활약할 기반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생산성본부가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와 함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석사와 박사 취득자는 전체 대학생의 한자리수에 불과하지만 미국과 독일 등은 10%를 넘어 우수한 인재의 절대적 수치에서 밀렸다. 여기에 대학원을 졸업한 남성의 소득은 고졸 남성에 비해 47% 많지만 미국의 72%, 독일의 59%에 불과해 높은 전문성을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러한 차이가 곧 노동생산성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노동생산성의 국제비교'에 따르면, 2020년 일본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7만8655달러로 OECD 가맹 38개 국가 중 23위에 머물렀다. 이는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로 처진 것으로 주요 선진국은 물론이고 후발주자인 한국이나 폴란드보다 아래다.

노구치 교수는 기고에서 "노동생산성 지표로 일컬어지는 취업자 1인당 GDP에서 2019년 한국이 일본을 역전했다"면서 "일본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3% 정도 낮고, 상상하기 싫지만 일본이 G7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에 한국이 들어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재택근무 확대로 권한 위임·자율성 인정

일본의 노동생산성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히타치제작소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 히타치가 재택근무로 노동생산성을 16% 높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히타치가 재택근무를 전면 도입하고, 직원들의 직무적합성을 높이면서 권한을 하부로 위임해 자율적으로 높은 성과를 유도한 점이 평가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히타치는 일본식 고용관행을 바꾼다는 방침으로 이미 2016년 12월 재택근무를 도입했지만 초기에는 직원의 14%만 참여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정부 차원의 재택근무가 권고되면서 전체 직원의 64%까지 높아졌다. 일부 관리직을 중심으로 직원간 소통을 이유로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히가시하라 도시아키 사장은 "히타치가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며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히 밀어붙였다.

가장 먼저 1만명이 넘는 관리직에 대한 개혁을 추진했다. 상대적으로 연령이 높은 관리직이 원격 업무에 익숙하지 않고, 젊은 사원들의 의식이나 일하는 방식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2020년 9월 관리직 전원에게 온라인을 통한 직원과의 소통 방법, 원격으로 팀의 과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해결할 것인가 등 실천적인 매니지먼트 기술을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나카하타 히데노부 전무는 "현재 자신이 맡은 직무 포스트에서 어떠한 능력과 기술이 부족한지 깨달아 가면서 관리직의 성취 의욕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2021년 3월부터 관리직 전원이 '연공서열형 고용'에서 '직무형 고용'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했다. 개별 직무의 포스트마다 업무의 내용과 요구되는 기술, 노하우를 분명히 제시하면서도 팀 운영을 개별 관리직의 재량에 맡긴 결과 자율적으로 성과를 내는 조직으로 변모했다.

히타치의 이런 개선책은 성과를 계속 내고 있다. 연결 매출과 이익을 일본내 직원 수와 총노동시간으로 나눈 생산성 지표를 분석한 결과, 2021년 2분기와 3분기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재택근무 도입 전인 2015년에 비해 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택근무를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에 비해서는 7% 늘었다.

히타치의 이런 노력에 한편으로 과제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2월 실시한 직원들 대상 조사에서 도전에 대한 의욕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눈앞의 성과를 요구하는 사원이 늘어난 반면, 성과의 여부를 측정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개인의 재량적 권한이 늘어나면서 스스로 숙련에 어려움을 느끼는 직원도 나왔다. 이에 따라 히타치는 '직무형 고용'을 관리직을 넘어 모든 사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7월에는 직장내 450여개 직종에서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명기한 직무기술서(잡디스크립션)를 완성할 계획이다. 여기에 외부 인재의 채용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히타치 직장 안팎의 인재들이 상호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도전의욕을 유발한다는 방침이다.

디지털 경제·재택근무·주휴 3일 도입

일본 내에서는 최근 낮은 생산성 극복을 위해 다양한 방안이 나온다. 핵심은 정부와 기업의 디지털 혁신이다. 반도체 후진국으로 전락한 일본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대만의 TSMC 공장을 유치하고, 경제안보 차원에서 미국과 다양한 반도체 동맹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 부처에 '디지털청'을 별도로 설립해 중앙정부 내부, 중앙과 지방정부 사이, 정부와 기업간 통합적인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히타치의 경우와 같이 재택근무를 활성화하는 것과 함께 '주4일제 근무'의 도입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파나소닉은 이달 6일 온라인 설명회를 통해 희망하는 사원에 대해 '주휴 3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늘어난 휴일을 직원들이 투잡을 하거나, 자기학습, 지역내 봉사활동 등을 통해 자기개발을 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정부와 기업, 국민들의 생각과 관행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의 생산성 향상은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중에 OECD 가맹국 절반 이상이 지난해 2분기에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분기 노동생산성을 회복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마이너스 2.8%에 머물렀다. 일본생산성본부는 이러한 배경으로 유연한 노동방식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해 9월 실시한 '기업 CEO 100명 조사'에서는 정부의 방역통제가 완화되면 종업원의 출근을 어떻게 할지 물었더니 60%가 "다시 출근을 늘리겠다"고 답한 데서 드러나듯 일본에서 유연한 근무의 정착까지는 갈길이 멀다는 평가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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