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주주대표소송이 겁나는 것일까

2022-01-24 12:35:40 게재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주주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한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마련했다.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제기여부에 대한 판단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름만 남아있는 주주대표소송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개정안은 2월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확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소송 관련 실무는 기금운용본부가 맡고, 소송제기 결정은 수탁위가 내린다. 현재는 주주대표소송 결정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담당하고, 예외적 사안에 대해서만 수탁위가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수탁위가 사실상 최종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반대하려면 기업의 몰상식행위 어떻게 할지 먼저 답해야

그런데 이 개정안에 대해 경제단체들이 강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대한상공회의소, 코스닥협회 등 7개 단체는 10일 공동성명을 통해 "기업 벌주기식 주주 활동에 몰두하는 국민연금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반발했다.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은 기업의 신뢰도와 평판에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어 20일에는 상장회사협의회와 경총 주최로 토론회를 열고 반대론을 다시 환기시켰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연금사회주의'라고 표현하며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주장이 옳은지 그릇된 것인지는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주식시장 안팎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살펴보면 더 간명하게 이해된다. 그 어떤 논란의 타당성 여부는 대개 논리보다 사실이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올 들어 여러 기업이 저지른 몰상식한 행위 때문에 기업가치가 추락했다. 물적분할된 기업의 중복상장, '먹튀'나 다름없는 경영자의 스톡옵션 주식매각, 재벌총수의 부적절한 언행, 대형참사로 인한 주가하락 등으로 소액주주들은 뜻하지 않게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 피해는 어떻게 보상될 수 있는가. 문제를 야기한 오너나 경영자가 주식을 완전히 다시 사들이거나 보상해주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국민의 노후재산을 위임받아 운영하는 국민연금의 손실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수탁자 권한강화를 통한 주주대표소송 활성화에 반대하는 재계는 이런 물음에 우선 대답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런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어떻게든 책임을 모면할 궁리만 한다.

주주대표소송이 남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현재 수탁위는 기금위 산하 전문위원회로 9인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는 전문가 중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3인의 상근전문위원도 포함돼 있다. 아마도 이들 상근전문위원회가 상당히 깊이 있는 검토를 하고 기본방향과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사실 어떤 기업이나 그 이사에게 대표소송을 제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정치권 입김에 휘둘려서도 안되고, 일반여론에 너무 민감해도 안된다.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마디로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국회에서도 상임위원회가 있지만, 특정법안 심사를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하곤 한다. 상근전문위원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들 전문가가 양심에 따라 엄밀하게 검토한다면 재계의 주장과 달리 정치·사회적 이해관계나 여론에 따라 소송제기를 결정할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소송을 당하는 기업은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소송 당하지 않고 넘어가고 싶다는 것이 재계의 속마음인 듯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도 겁먹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 스스로 선진화 막는 디스카운트 요인 해소할 기회

'선진국' 한국이 코리아디스카운트라는 멍에를 아직 짊어지고 있듯이, 대기업들도 저마다 디스카운트 요인을 안고 있다.

대기업의 전문경영자들이 디스카운트 요인을 알고 있더라도 스스로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총수와 그 일가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주대표소송이 본격화되면 경영자들이 처신하기도 쉬워진다. 총수가 어떤 결정을 일방적으로 할 경우 주주대표소송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진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계는 너무 겁먹을 필요 없다. 선진화를 위해 디스카운트 요인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하늘이 마련해줬다고 여기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