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의 결합 융합수업

문·이과 분리? 닫힌 사고 깨트린 융합수업

2022-03-30 10:16:31 게재

제주 대정고 교과 융합 프로젝트 … 대정지역 '해상풍력단지 설치 문제' 탐구

학생들은 왜 공부를 힘들다고 느낄까? 제주 대정고 사회-과학 교사들이 뭉쳐 '나의 삶, 친구의 삶, 지역 주민의 삶, 자연의 삶' 속 문제를 신나고도 의미 있게 해결해보는 융합 수업을 고민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하는 공부가 우리 삶에 어떻게 접목되는지 학생들이 스스로 느껴본다면 더는 힘들기만 한 공부가 아니다.
따로 또 같이, 학교에서 배우는 융합 수업을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여러 교과의 '화학적' 결합이 가져온 융합 수업의 교육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진 이의종

 

교육부가 고교학점제에 맞춰 준비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융합 선택 과목'의 신설을 예고했다. '교과 내-교과 간 주제를 융합한 과목, 실생활 체험 및 응용을 위한 과목'의 성격이다. 교육과정 개정 방향에서도 '깊이있는 학습, 교과 간 연계와 통합, 삶과 연계한 학습'이 강조됐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융합 수업'의 경험은 '수업량 유연화에 따른 학교 자율적 교육 활동'을 통해 쌓이고 있다.

제주 대정고 교사들이 특히 '교과 융합 프로젝트형' 수업에 주력한 이유는 문·이과 구분을 탈피, 학생들에게 융합적 사고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융합 수업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접하는 훈련이 이뤄지면 진로를 탐색하는 학생들의 시야도 넓어지고 선택 수 제한으로 듣지 못한 과목들을 접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융합 선택 과목' 신설 예고 = 가장 먼저 한 일은 융합 수업 연구를 위한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꾸리는 작업이었다. 화학과 물리학, 생명과학, 사회, 윤리를 전공한 교사들이 의기투합해 수업 설계에 나섰다. 과학과와 사회과 교육과정을 교차해 들여다보며 융합할 수 있는 내용 요소와 성취 기준을 찾아나갔다.

여러 주제를 브레인스토밍했고 대정고 학생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제들로 좁혀나갔다. 윤지현 화학 교사는 지난 16일 "그 과정에서 나온 주제가 제주 대정 지역의 해상풍력단지 설치 문제 였다"고 전했다.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들의 몰입도가 커야 팀워크를 잘 발휘할 수 있다. 학생들이 흥미와 관심을 보일 만하되,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가 좋다. 최근 대정 지역의 해상풍력단지 설치가 전면 취소된 사실을 접하면서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해상풍력이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해양생태계 파괴나 어업 피해 문제 등 지역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교과마다 연결해볼 지점이 많은 주제였다."

◆생태·경제·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 여러 차례의 협의를 거쳐 아이디어가 모이면서 총 7차시에 걸친 수업 재구성이 완성됐다.

먼저 '화학Ⅰ'에서는 풍력발전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수직축 풍력발전기'를 직접 제작해보고 '물리학Ⅰ'에서는 전자기 유도 실험을 통해 풍력발전의 원리를 이해했다.

'경제' 수업에서 풍력발전과 화력발전의 경제성을 비교한 뒤 '생명과학Ⅰ'에서는 생물학·생태학적 관점에서 대정지역의 해상풍력단지 설치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탐구했다. '윤리와 사상'에서는 의사 임산부 노인 범죄자 돌고래 등 7개 존재에 물통 6개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활동을 통해 '합리적 선택은 윤리적 선택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인 교과 융합은 과목별 학습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가치를 고려한 해상풍력단지 설치 찬반 토론에 적용됐다. 토론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풍력단지 설치 문제를 융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정책 제안서로 써보는 활동이 이 프로젝트의 마무리였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융합 수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사실 단일 교과 안에서도 융합 수업이 가능하지만 여러 분야의 교사들이 한 주제를 연계성 있게 진행하니 학생들도 신선하게 받아들었다. 교과 내 융합보다 더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학생들의 생각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성과다.

"단순히 한가지 관점에 매몰되지 않았다. 생태적·경제적·윤리적 관점 등 다양한 관점에서 타당한 근거를 들며 의견을 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모둠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박하면서 결론을 도출해보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이 느껴졌다."

◆여러 교과 협력 방식이어야 = 융합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업을 들은 학생의 77.4%가 '매우 만족한다', 21.5%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융합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들이 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됐는지에는 74.2%가 '매우 그렇다', 22.6%가 '그렇다'고 답했다.

융합 수업을 시도하면서 교사들이 찾은 시사점은 '교과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속적 협의'의 중요성이었다. 각 교과의 특성과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교과가 연결될 수 있는 방안과 학생들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면 지속적 협의는 필수적이었다.

"만약 충분한 협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수업을 했다면 체계적인 진행이 어려웠겠다는 생각을 매번 했다. 1학년 수업에 먼저 적용해보고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해 2학년 수업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좀 더 발전적 형태가 됐다. 다행히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우리 생활과 더 밀접하고 많은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를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의견이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의 수요를 미리 조사해 반영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었다."

현재의 교육과정 안에서 융합 수업을 진행하며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학생부 기록이다. 수업량 유연화에 따른 융합 수업은 개인별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에 기록할 수 있지만 이는 담임 교사의 권한이다.

여러 교과 교사들이 모여 진행한 수업에서의 관찰기록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리하는 과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 면에서 '융합 선택 과목'이 신설되면 기록 주체가 명확해지기에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짧은 기간 동안 진행해야 했기에 학생들이 쉴 틈 없이 따라왔던 것 같다. 정규 과목으로 들어오면 충분한 시간 확보라는 장점도 있을 듯하다. 다만 '융합 선택 과목'을 교사 1명이 담당할 경우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담당 교사의 전공에 따라 특정 분야에 치우친 수업이 될 가능성도 높다. 교과 협력팀 등을 구성해 융합 수업에 대한 조언과 협조를 기반으로 설계해야 과목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김기수 기자 · 정애선 내일교육 기자
김기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