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사회적 대화 | ① 역대 정부 사회적 대화의 성과와 한계

사회적 대화는 노동시장 개혁위한 '숙의민주주의'

2022-05-03 11:32:39 게재

20여년 동안 298개 사회적 합의 성과 … 박근혜정부 '9.15 대타협' 4개월 만에 '파기'도

"나는 늘 '한국노총의 친구가 되겠다'고 말했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친구로 계속 남겠다. 어느 때보다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15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한 말이다. 노동계와 대화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 속에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정부 정책의 기조 변화가 예상된다. 새정부가 선거 과정에서 내비친 노동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유연화'다. 문재인정부 내내 유지됐던 '노동존중사회'와 대척점에 서있다. 각론에 따라 강도는 다르겠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개혁은 방향도 중요하지만 실천과 과정의 정치가 더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사회적 대화가 주목된다. 개혁의 견인차로서 자리매김해온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의 의미와 역사를 짚어보고 윤석열정부의 사회적 대화를 전망해본다.


사회적 대화가 노동시장 개혁과정에서 필수 경로가 된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사회적 대화는 그 자체가 '숙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는 경제사회 주체들이 공동의 문제를 끊임없이 숙의하는 공론화의 과정으로서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기제다.

사회적 대화는 개혁의 주요 동력이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법적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전신 노사정위원회)만 봐도 1999년 특별법으로 설치되고 2018년 개편돼 운영해오는 동안 경사노위가 합의한 내용은 제도화 과정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경사노위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총 298개의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노동시장정책이 118개(40%)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정책(60개), 사회보장(45개), 노사관계(43개), 노동안전(17개), 구조조정(11개) 정책 등이 포함됐다.

박태주 경사노위 전 상임위원은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조건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가 낮은 노사 조직률, 기업별 교섭체계, 친노동자 정당의 부재로 인해 작동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이 오히려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높인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얻는다.

1998년 2월 6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 사진 왼쪽부터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한광옥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이기호 노동부 장관, 정세균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사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공


노조가 없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는 1800만명 임금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대기업의 담장을 넘지 못하는 교섭구조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오히려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1996년 노사개혁위원회 이후 사회적 대화는 노동법 개정이 중심축이었다"며 "다음 사회적 대화는 노동시장 불평등·양극화 문제, 대전환에 따른 고용구조 변화 등 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를 의제로 대화 주체나 협의·합의 방식도 개선해 발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정부> "외환위기 극복과 노사정위 입법화"

사회적 대화의 태동을 1996년 5월에 출범한 김영삼정부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제도화의 측면이나 경제사회에 준 영향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는 김대중정부의 '노사정위원회'다.

1997년 1월 한보가 최종 부도처리되면서 기업들의 부도 도미노 사태와 대량실업의 공포가 현실화됐다. 김영삼정부는 그해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했고 보름 만에 IMF와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는 고금리와 긴축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기관 구조조정 방안이 포함됐다.

그 사이 대통령이 바뀌고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사에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고 1998년 1월 15일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했다.

노동계는 재벌개혁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경영계는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와 사회안전망 구축을, 정부는 노·사의 요구사항을 조합한 정책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노동계가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법안을 수용했고 경영계는 재벌개혁과 노동기본권 조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발족 22일 만인 2월 6일 노사정은 90개 항에 이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1기 노사정위는 외환위기 탈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적대적 노사관계 속에서 민주적 방식을 통해 노사정이 이해관계를 성공적으로 조정했다. 최초의 국가 수준의 3자 타협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합의안이 부결됐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를 탈퇴하고 지도부가 교체되는 진통을 겪었다. 이른바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트라우마'가 시작됐다. 합의 내용이 선별적으로 입법되면서 사회적 합의 체제의 한계가 드러났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극복과정이면서 민주화 과정이기도 했지만 참여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 공간을 충분히 안착시키지 못했다"면서 "우리 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중심 기제로 자리하기보다는 특정 주체들에 의해서만 활용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2.6 대타협 합의 이행과정의 불협화음이 사회적 대화의 제도화를 촉발시켰다. 양대 노총은 1999년 2월 이후 정부의 입법 지연과 일방적 구조조정에 항의해 노사정위 탈퇴를 의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노조 전임자 급여지원 문제에 대한 노정 간 협의를 이유로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정부는 국면전환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법'을 추진하고 그해 5월 입법했다.


<노무현정부> "대화와 타협, 사회적 대화 강조"

노무현정부는 국정과제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제시했다.

노사정위 운영 내실화, 노사분규에 대한 공권력 개입 최소화,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노동자 참여 등을 담았다. 특히 집권 초기부터 민주노총도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모색했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도 사회적 교섭 추진을 내세웠다. 하지만 화물연대 등 대규모 파업현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 등으로 노-정 대치가 격화됐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반대파의 폭력적 의사진행 방해로 얼룩졌다. 그 대안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추진됐다. 민주노총은 참여와 불참을 반복했다. 결국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정부와 한국노총, 경총은 복수노조 금지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간 유예, 기간제 사용기간 2년, 근로자파견제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에 합의했다.

이후 노사정위는 의제 확장과 회의체 구조 변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개편안을 추진하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명박정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이명박정부는 '기업 프랜들리'라며 기업 쪽에 무게 중심을 둔 정책을 펼쳤다.

정부 초기 '지역별 노사정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전국 수준의 사회적 대화보다는 지역의 노사정이 협력해서 '노사분규 없는 안정된 노사관계'만 이루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의원입법으로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 기구의 폐지 법안이 상정되면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의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고 이를 계기로 다시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됐다. 노사정은 물론, 시민사회와 종교계까지 포함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가 구성됐다.

2009년 2월 2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가 도출됐다. 위기극복을 위해 '노사는 임금동결, 일자리 유지 노력 등 고통분담' 등을 담았다. 같은 해 7월 20일엔 기업의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시행 및 근로시간면제제도 도입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


<박근혜정부> "9.15 대타협 체결, 그리고 파기"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정부 때 김대환 노동부장관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주문했다.

2014년 기본방향에 관한 합의에 이어 노사정은 1년여 간의 진통 끝에 마침내 2015년 9월 15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청년고용 활성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과 '통상임금·실근로시간단축·임금제도 개선' 등 3대 현안 해법,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등이었다. 하지만 대타협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저성과자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관련 행정지침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노동계와 갈등을 증폭시켰다. 비정규직 등에 관한 국회 입법이 노정관계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급기야 한국노총이 2016년 1월 19일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입법도 물 건너가는 파국을 맞았다.


<문재인정부> "한국형 사회적 대화 체제 개편"

문재인정부는 한국형 사회적 대화 체제 구축을 통한 노동존중사회의 구축을 강조했다.

문성현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한국노총 출신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정부 출범 초 '9.15 대타협 파기'의 원인이 된 박근혜정부의 '2대 지침'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지웠다. 이후 주52시간 상한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친노동정책을 추진했다.

노사정대표자 회의를 통해 사회적 대화 체제도 개편했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 소상공인 등 참여 주체를 다양화하고 의제도 확장하면서 명칭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꿨다.

민주노총을 참여시켜 '완전체 사회적 대화'를 이루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세차례나 만나 설득했다. 그러나 2019년 1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참가가 부결됐다.

결국 민주노총의 참여는 무산됐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한국노총의 참여만으로 2018년 11월 22일 '개문발차'했다.

당정의 요청에 따라 시작된 탄력적 근로시간제 논의가 2개월여 만에 극적 합의문을 도출했다. 하지만 최종 합의를 둘러싸고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위원들의 회의 보이콧으로 진통을 겪었다. 2019년 위원회 위원 전원 사퇴 및 재위촉을 통해 9월 제2기 체제가 시작됐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다시 한번 민주노총을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이 시도됐지만 결국 민주노총은 빠진 채 2020년 7월 28일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체결됐다.

이후 경사노위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근로자대표제, 플랫폼노동종사자 보호방안 등 크고 작은 합의를 도출하는 적지않은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사용자들로부터 '노동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을 받으며 회의체 보이콧 위기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정부 사회적 대화" 연재기사]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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