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는 '늘공(직업공무원)의 시대' … 전문성 활용? 개혁과 거리?

2022-05-06 11:58:32 게재

윤 당선인 "공무원 일 잘해" "논공행상 안돼" 인식

내각과 대통령실에 관료 대거 중용 … 정치인 소외

"국정 경험·전문성 탁월" "개혁과제 손도 못댈 것"

평생 검사로 지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무원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한다. 실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자신과 인연이 짧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강한 편으로 보인다.

그 결과 내각과 대통령실 인선에서 공무원 출신인 늘공(늘 공무원)이 중용되고, 정치권 출신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은 소외되고 있다. 늘공의 약진은 국정 경험과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지만, 민심과 괴리되고 개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어린이들과 기념촬영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오전 자택이 있는 서초구 주상복합단지 내에서 입주민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보수정치를 대표하는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저서 '보수의 유언'에서 "자신(관료)이 담당하고 있는 전문 분야를 열심히 공부해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관료는 이미 전형적인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고, 정책을 만든다" "민중의 목소리를 잘 듣고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한 업무의 하나인 정치인이 중심이 돼 정치를 운영하면 국민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기 쉽다. 관료는 선거에서 선출되는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민심에서 떠나 있는 경향이 많다"고 적었다.

◆비서관 19명 중 늘공 13명 = 윤 당선인은 5일 대통령실 비서관급 19명을 발표했다. 이중 검찰을 포함한 공무원 출신이 13명에 달했다. 비서관 19명 중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정치권 출신은 한오섭 국정상황실장 등 3명에 불과했다.

앞서 발표된 내각과 대통령실 수석급 인사도 비슷했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 19명 가운데 전현직 의원은 5명 뿐이다. 그나마 이들 전현직 의원 5명 가운데 4명은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경우다.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수석급 10명 중에도 정치인은 2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확정된 내각과 대통령실의 면면은 '늘공 중용' '어공 소외'로 해석될 법하다. 아직 발표 전인 대통령실 비서관과 행정관(2급 이하) 인사에서도 관료인 늘공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전언이다. 어공은 손꼽을 수준이라고 한다.

이같은 인선은 윤 당선인의 인재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검사 출신인 윤 당선인은 검찰 출신을 비롯한 늘공에 대해선 "국정경험과 실력이 충분하다"는 신뢰가 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인사 담당자들에게도 늘공 위주 인선을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반면 윤 당선인은 전현직 의원이나 보좌진, 당직자에 대해선 신뢰가 약하다고 한다. 어공과 손발을 맞춰볼 시간도 짧았지만, 역대정권 사례에 비춰볼 때 어공이 내각과 대통령실의 주도권을 쥐면 국정이 지나치게 '정치화'된다는 우려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공신끼리 논공행상하는 모습도 막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정권초 '늘공의 시대'가 된 건 박근혜정권과 판박이다. 박 전 대통령도 어공에 대한 불신이 컸던 반면 늘공의 경험과 실력에 대해선 믿음이 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정권초 발탁한 장차관과 비서관급 이상 91명 가운데 늘공이 50명에 달할 정도였다. 정치인은 13명에 불과했다. 박근혜정권의 밑그림을 그렸던 어공은 철저히 소외됐다. 십상시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로 대선에서 공이 컸던 '실세'조차 대통령실 3∼4급 행정관에 임명될 정도였다. 차관급과 1급이 발에 차일 정도인 대통령실에서 3∼4급 행정관은 아무런 힘이 없다. '늘공의 시대'에 대한 우려가 컸던 십상시 3급 행정관이 발령 한 달만에 사표를 내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관료에 포위된 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내부견제 없이 지내다가 '첫 탄핵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늘공 시대, 기대·우려 교차 = 윤석열정부가 '늘공의 시대'를 재연한 것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국정의 안정감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문재인정부처럼 내각과 대통령실의 주도권을 어공이 쥐면 개혁을 외치기 마련이기 때문에 국정의 안정감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늘공은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기 때문에 국정이 요동칠 일은 없다. 국정 경험과 실력이 이미 검증됐기 때문에 평균점은 무난하다.

반면 늘공은 시키는 일에만 익숙하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게 된다.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에 민심에 신경쓰기 보단 행정 편의주의에 젖기가 쉽다. 관료주의 행정이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낸 숱한 개혁과제는 손 댈리 만무하다. 정치인이 계속 소외된다면 향후 당청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윤석열정부에 등돌리는 정치인이 많아질수록 대통령 뜻대로 당과 국회가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윤석열 대선캠프 출신의 정치권 인사는 6일 "검사 출신 대통령이라, 검사를 비롯한 관료를 중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어공을 완벽하게 배제할지는 몰랐다"며 "대통령이 관료에 둘러싸이면 당장은 안정감이 들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 직면한 연금과 노동 등 개혁과제는 손도 대기 어려워진다. 그 개혁과제는 관료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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