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감사시장' 개혁 중인 영국, 빅4 독점 깨기 어려워

2022-08-08 10:51:16 게재

중견 회계법인 감사품질

평가결과, 기대에 못 미쳐

우리나라도 빅4로 회귀

대형 상장법인 감사시장의 빅4(PwC KPMG Deloitte EY) 회계법인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한 영국 금융당국의 개혁 추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빅4 견제를 위해 중견 회계법인의 역할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견 회계법인들의 낮은 감사품질이 발목을 잡고 있다.

7일 블룸버그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회계규제기관인 재무보고위원회(FRC)가 회계법인이 수행한 기업 감사에 대한 감리를 벌인 결과 중견 회계법인인 BDO와 마자르(Mazars)가 2년 연속 최악의 점수를 받았으며 감사품질에 대해 FRC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BDO가 수행한 상장기업 감사 12곳 중 7곳(58%)만 FRC의 기준에 부합했는데 이는 지난해 44% 보다는 다소 개선됐다. 마자르의 경우 8개 기업에 대한 감사 중 절반 가량만 기준에 부합했다. FT는 "빅 4가 장악한 시장 내에서 중견 회계법인들이 더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려고 함과 동시에 FRC의 요구사항들을 맞추려고 하다가 어려움에 직면한 결과"라고 밝혔다.

영국에서는 건설회사인 카릴리언(Carillion)과 대형 제과 및 카페 체인점인 파티세리 발레리(Patisserie Valerie) 등 최근 몇 년간 대형 기업들이 부실로 문을 닫았고 이들 기업들의 실패와 회계분식을 막지 못한 빅4 회계법인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FRC는 영국 대기업들의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대다수 상장기업의 감사를 빅4 회계법인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중견 회계법인들이 함께 감사를 진행하는 경쟁 구도로 바꾸기 위한 제도적 변화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빅4 중 하나인 KPMG는 감사업무 중 59% 정도만 기준을 넘어섰지만 올해는 84%까지 향상되면서 상당한 개선이 이뤄졌다. FRC는 KPMG에 대해 "개선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지속적인 추세라고 하기에는 이르다"며 "지난 3년간 저조한 평가를 받은 은행 감사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FRC 평가결과, 빅4를 포함한 상위 7개 회계법인들이 수행한 기업 감사의 25%는 일부 개선 또는 상당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29%에서 다소 나아진 것이다.

대형 상장기업들의 감사 점수는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는 높았으며 런던 증시에 상장된 상위 350개 기업(FTSE350)들을 대상으로 한 감사에서는 대형 상장기업들 중 12%만이 개선 또는 상당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존 톰슨(Jon Thompson) FRC 위원장은 "대형 회계법인들의 감사품질이 어느 정도 개선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시장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장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wC는 감사업무 중 83%에서 최고 점수를, Deloitte는 82% 가량 최고 점수를 받았다. EY는 지난해 79%에서 올해 65%만 최고 점수를 받아 빅4 중 유일하게 평가가 하락했다. 다만 EY가 수행한 17건의 감사 중 FRC가 상당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감사는 없었다.

수익 기준으로 영국에서 6번째로 큰 그랜트손튼(Grant Thornton)은 5건의 감사 모두 수준 미달로 나타났다. 그랜트손튼은 지난 2년간 감사 점수를 향상시켰지만 대기업 감사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FRC는 위험성이 높은 감사를 맡지 않음으로써 벌금이나 낮은 감사 점수를 피하려는 감사들인에게 경고했다.

BDO와 마자르, EY는 당국의 평가결과에 대해 전문성과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회계개혁으로 도입된 지정 감사인 제도를 통해 중견 회계법인들의 대형 기업 감사를 확대했지만 최근 다시 빅4 회계법인(삼일 삼정 한영 안진)으로 회귀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내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빅4 회계법인이 지정감사를 맡도록 제도가 바뀐다.

지정 감사인 제도는 금융당국이 기업의 외부감사를 맡을 회계법인을 지정하는 것을 말하며 기업과 회계법인의 규모에 따라 그룹(가~마군)을 분류하고 있다. 현재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으로 분류되는 '가군'에 속한 대기업에 대해서는 회계사 600명 이상의 가군 회계법인만 외부 감사를 맡을 수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기업의 가군 분류 대상이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으로 변경됨에 따라 빅4 회계법인의 외부 감사대상 기업이 확대된다. 지정 감사인 제도 시행으로 중견 회계법인의 업무가 크게 증가하면서 대형 기업에 대한 감사품질 하락 우려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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