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회계법인 중심 '감사인 지정제 개편'에 커지는 반발 기류

2022-08-11 11:35:55 게재

"금융당국이 감사역량 잘못 분석" … 등록회계법인들 공동대응 나설듯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지정감사, 빅4 회계법인만 가능하게 개편 추진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외부감사인 지정을 빅4(삼일 삼정 안진 한영) 회계법인으로 제한하는 금융당국의 '감사인 지정제 보완방안'에 대해 중견회계법인을 중심으로 회계업계의 반발이 점차 커지고 있다.

회계개혁을 통해 감사시장 전반의 감사품질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이 추진됐지만 결국은 과거 빅4 중심 체제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1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외부감사를 맡을 수 있는 40개 회계법인(금융위원회 등록) 중 빅4를 제외한 30개 이상의 회계법인들이 '감사인 지정제 개편방안'의 문제점에 대해 공동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2019년 11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가 도입되면서 상장사와 대형 비상장사는 6년간 외부감사인을 자유선임했다면 이후 3년간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겨야 한다. 감사인을 지정하기 위해 기업을 규모에 따라 5개(가~마) 그룹, 회계법인도 5개(가~마) 그룹으로 개편, 기업 규모에 맞게 회계법인을 지정하는 방식을 시행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확대되면서 나군(자산 1조~5조원) 기업에 대해 가군(빅4) 회계법인 뿐만 아니라 나군(8개 중견회계법인) 회계법인도 외부감사를 맡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시행 3년 만에 금융당국은 현재 5조원 이상 기업들로 구성된 가군을 2조원 이상으로 확대, 기업 그룹을 4개로 줄이는 개선안을 마련했다. 빅4 회계법인이 아니면 자산 2조원 기업에 대한 지정 감사를 맡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감사 투입시간과 감사숙련도 비교 빠져 = 금융당국이 이 같은 방안을 제시한 근거 중 하나는 중견회계법인에 지정감사가 쏠리면서 감사역량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중견회계법인 인력은 회계시장에서 33%를 차지하지만 감사인 지정 기업 중 59%를 배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계업계에서는 "회계사와 지정회사 개수만으로 감사역량을 비교한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사역량을 비교하려면 단순히 지정회사 개수뿐만 아니라 지정회사 규모와 감사시간, 감사보수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빅4에서 삼성전자 1곳을 지정받으면 이는 자산 2000억원 회사를 50개 가량 지정받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지정회사 개수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삼성전자를 지정받은 회계법인은 7개 종속회사를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규모만 놓고 보면 자산 2000억원 규모의 기업 13곳을 추가 지정받는 효과도 있다. 감사 투입시간과 감사보수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함께 금융당국은 회계법인 구성원의 감사숙련도 역시 고려하지 않았다. 빅4 회계법인(가군) 소속 회계사 4620명 중 1727명(27.2%)이 수습회계사인 반면, 중견회계법인들이 속한 나군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1543명 중 수습회계사는 100명으로 6.1%에 그친다. 빅4의 경우 감사업무를 하지 않는 회계사들의 비중도 높다. 전체 매출액 대비 감사매출 비중은 빅4의 경우 33%, 그 외 회계법인은 47%로 차이가 있다.

◆"금융당국, 감사품질 관리 포기 했나" = 중견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시장 점유율을 지정회사 개수로 비교한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며 "대형 회계법인의 대우조선해양 부실감사로 회계개혁이 단행됐는데, 중견·중소회계법인에서 특별히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또 다시 빅4 중심체제로 회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 기업들의 나군 회계법인 재지정을 막는 것은 또 다른 규제로 여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지정 외부감사를 '나군 회계법인'에 개방했으나 '나군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향상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부실감사에 대한 대응 여력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중견회계법인들은 금융당국의 품질관리 강화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실무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계속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에서 근무했던 한 회계사는 "금융당국이 40개 법인의 등록심사를 통해 상장회사 감사를 하도록 허가 내놓고 이제 와서 감사품질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며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향상을 위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회계법인에게만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개편안을 보면 금융당국이 중견·중소회계법인의 감사품질 관리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지정감사 개편 관련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의 변경을 지난달 예고했으며 내달 증권선물위원회·금융위원회 안건 상정을 통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원안대로 안건이 통과되면 내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지정감사는 빅4 회계법인만 맡게 된다.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은 의견을 모아 조만간 금융당국에 제출하는 등 반대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낼 예정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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