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회계업계 '히든 챔피언'이 필요한 이유

2022-08-16 11:31:25 게재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지정감사를 대형 회계법인인 '빅4'(삼일 삼정 안진 한영)에게만 맡기는 방안을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다. 현재 자산 5조원 이하 기업의 외부감사를 맡고 있는 중견회계법인들을 배제시키는 내용이다. 품질관리 능력이 떨어지고 감사역량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회계개혁을 추진하면서 회계법인들의 체질개선을 중요한 과제로 내세웠다. 빅4 회계법인들은 회계법인 내 인사와 수입·지출의 자금관리, 회계처리, 내부통제, 감사업무 수임 및 품질관리 등 경영 전반의 통합관리를 위한 '원펌 시스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회계법인은 회계사 개개인의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감사품질관리에 충분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도입된 게 감사인등록제다.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을 심사해 일정 기준을 통과한 40곳에 대해서는 상장법인의 외부감사를 맡을 수 있는 소위 '허가권'을 준 것이다.

40곳이 심사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빅4 수준의 '원펌 시스템'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끊임없는 관리·감독을 통한 체질개선을 주문하고 등록요건에 미달하는 곳은 과감히 등록을 취소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으로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외부감사를 빅4 회계법인에게만 허용한다는 것은 회계업계 전반의 체질개선이라는 방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회계개혁이 한창인 영국은 감사시장에서 빅4의 독과점구조를 깨기 위해 오히려 대형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를 빅4와 중견회계법인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견·중소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등 구조조정 기업 다수를 보유하고 있어 수많은 컨설팅을 빅4 회계법인들에게 맡긴다. 감사보수보다 컨설팅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빅4들은 '이해상충' 문제로 산업은행 감사를 피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현재 외부감사는 중견회계법인인 삼덕이 맡고 있다.

빅4를 둘러싼 이해상충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빅4에 의존하는 현재의 구조에서 대기업의 분식회계 사건이 잇따라 터질 경우 시장 전체가 흔들리거나 심지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탄탄하게 감사시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위 '히든 챔피언'으로 불릴 회계법인들이 필요한 이유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회의 장'을 제공해야 할 금융당국이 오히려 판을 깨서는 안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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