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보다 길었던 '100일 회견' 모두발언

2022-08-18 11:22:47 게재

성과보고 의욕, 질문 제한

윤 "국민말씀 받든다는 것"

전날 발언 취지 재차 강조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긴 '모두발언'을 한 이유에 관심이 모인다. 평소 간명한 메시지를 선호했던 윤 대통령이 직접 의지를 표했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지적이다. "민심을 받들겠다"는 메시지를 앞세우면서도 100일간의 성과를 강조하고, 질문공세는 물리적으로 제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17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약 20분에 걸쳐 모두발언을 했다. 글자수로는 4600여자, 1380개 가량의 단어가 들어갔다.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 때는 2600여자, 810여개 단어, 이달 15일 광복절 경축사 때도 2800여자, 860여개 단어를 썼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많은 분량이다.

질의응답하는 윤석열 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100일간의 성과를 10여 가지 분야로 나눠 나열했는데 청와대 개방,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 민간중심 경제정책 전환, 탈원전 폐기 등 기존의 내용들을 다시 환기시키는 수준이었다. 야권을 중심으로 '자화자찬'이라는 비난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 진행방식은 윤 대통령이 강하게 의지를 보였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8일 "윤 대통령이 100일간 있었던 일에 대해 국민들께 소상히 보고드리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며 "그 취지대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긴 모두발언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게 읽혔다. 다른 관계자는 "민심을 받들겠다는 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는데 묻히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했다"며 "결과적으로 '선방'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무사히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렵고 예민한 현안들이 많은 상황에서 각본도 없이 첫 기자회견을 했다"며 "많은 질문을 모두 받아내는 것 보다는 대통령이 뜻하는 메시지에 비중을 두는 쪽이 관리 가능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총 40분으로 계획된 이날 기자회견이 절반 가까이가 모두발언에 할애됨에 따라 기자들의 질문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은 예정보다 10분이 길어져 12개의 질문이 나왔지만 '뜨거운 감자'였던 김건희 여사 문제, '내부총질' 문자 문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못했다.

전날 기자회견과 관련, 윤 대통령은 18일 용산 집무실 출근길 기자들에게 "어제 회견을 취재하느라 애 많이 썼다"며 "취지는 국민 말씀을 세밀하게 챙기고 받들겠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발달장애인과 조력자 및 부모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윤 대통령은 "제 사무실과 1층 로비 발달장애인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며 "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한 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사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결집된 목소리 내기 어려운 분들을 국가가 찾아 공정 기회를 찾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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