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구체화하는 미·중간 공급망 전쟁과 일본 혼다의 전략

2022-09-07 12:02:04 게재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

반도체와 2차전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 간의 공급망 갈등은 가히 기술패권 '전쟁'이라고 불릴 만하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하거나, 한국에 대해서 미국 한국 대만 일본으로 구성된 반도체공급망협의체 '칩(Chip)4'에 참여할 것을 압박하고 있으며, 8월 7일(현지시간) 찬성 51표, 반대 50표로 상원을 통과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그 전쟁의 양상을 더욱 구체화했다.

중국은 중국대로 거듭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를 날린다. 한국정부는 칩4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고 하지만 중국은 다르게 보는 듯하다. 미국은 칩4라는 용어 대신 '팹(Fab)4'라고 부르는데, 팹은 생산시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제조능력을 가리킨다.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은 설계 및 장비에 우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시설만 묶으면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이 완성된다.

이미 베이징대학 국제전략연구소는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반도체 제조와 AI분야에서 기술과 인력의 진공상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중국의 반도체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은 2025년에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나 '반도체 굴기'를 효과적으로 막을 약한 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아니 산업고도화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약한 고리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인 고리다.

미국 구상대로라면 중국은 아날로그칩이나 저사양의 PC용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현재의 단계에 머무르게 된다. 시진핑의 재집권 문제로 주춤하지만, 향후 중국이 사활을 건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예상하는 이유다.

일본 기업의 이원화 전략 참고할 만

한편 일본의 간판급 자동차업체 혼다가 글로벌 생산체제를 중국 이외의 지역과 중국으로 이분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8월 25일자)가 주목을 끌었다. 중국에 의존하던 부품공급망을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분리해 대체하겠다는 혼다의 구상, 뒤집어 말하면 중국 시장을 겨냥해서는 중국내에 별도의 공급망을 다시 만들겠다는 구상은 한국도 관심을 둘 만하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치·군사적 동맹인 미국과 최대 무역국가인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요구받고 있는 와중에 혼다가 기업차원에서나마 하나의 해법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혼다의 구상을 굳이 공급망 전쟁과 연관시키지 않고, 단순히 중국의 대도시 봉쇄로 큰 타격을 입은 데 대한 대응 정도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중국에서의 생산량이 전체생산량의 38~39%에 이르는 혼다와 달리 일본내 생산 비중이 높은 도요타자동차는 다른 구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 중국 공급망 의존도 차이에 따라 기업별로 다양한 대응전략을 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적층세라믹커패서티(MLCC)라는 핵심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무라타제작소나 공조기기를 생산하는 다이킨공업 같은 일본의 대표 제조기업들도 생산체계를 미국과 중국으로 이원화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원화가 미중 간 공급망 전쟁에 대한 기업의 일본식 대응 전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추론을 하게 된다.

여기서 지난 5월에 일본 국회를 통과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경제안보법)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법은 미중 간의 첨단기술 경쟁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과 공급망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서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편에 설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중국과 명시적으로 각을 세우는 일본정부의 태도가 기업 차원의 다양한 대응 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정부와 같은 명확한 중국 적대시 태도를 한국이 따라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기업 차원의 유연하고 다양한 대응책들이 만들어질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한국정부의 역할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어렵더라도 혹은 형식적으로라도 대중관계에서 정치·외교 부문과 경제 부문을 가급적 분리하려는 태도와 입장을 정부가 견지해 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차원에서 다양한 전략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한국과 비교되는 캐나다정부의 대응

캐나다정부는 2021년 10월에 미국정부가 '인플레감축법'의 전신에 해당하는 '더 나은 재건법'(BBB)을 공개하자 말자 정상까지 나서서 캐나다산 전기차에도 보조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로비했고, 결국 '미국산' 조건을 '북미산' 조건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 "뒤통수 맞았네"라고 한탄하면서 사후약방문식으로 예외를 읍소하는 한국의 대응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정부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조마조마하다. 언제까지 국민이 정부 여당 야당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그 반대여야 정상이 아닌가.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