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법원' 도입 고민해야

2022-09-16 10:32:45 게재

치료시설 확충없인 '무리' 지적도

법조계에서는 단속과 처벌에도 마약사범이 줄지 않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약물법원(Drug Court)'과 같은 '회복적 사법제도' 도입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회복적 사법제도란 처벌 위주의 형사재판을 보완하는 개념으로 1977년 등장했다. 구금 등을 통한 교화를 넘어 치료나 치유, 화해 등을 통해 재발방지를 꾀하는 개념이다. 국내에서도 20여년 전부터 연구가 진행돼 왔는데 대표적인 게 약물법원이다.

마약사범은 중독성이 강해 약물 의존도와 재범률이 매우 높다. 이에 형사처벌 대신 치료를 통해 단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약물법원의 역할이다. 특히 10~20대 마약사범이 구금되면 수감시설 내에서 또 다른 범죄나 마약유통 경로를 습득하기에 구금 대신 치료가 더 효과적이다.

◆1989년 미국서 첫 등장 = 1980년대 미국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해 수사기관은 수사자원 부족, 법원은 형사재판 급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교정시설 역시 과밀수용 문제가 발생했다. 사회 자원이 바닥이 날 정도지만 마약사범들은 줄지 않았다. 1989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에 처음으로 약물법원이 설립된 후 미국 전역에는 현재 3000개가 넘는 약물법원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이 마약에 심각하게 노출된 지역의 경우 청소년약물법원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10대 마약사범이 증가세에 있는 한국에서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미국형사사법정책연구원(NIJ) 등이 약물법원 치료대상자들을 장기간 추적 조사한 결과 비교군에 비해 재범률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범죄에 대해서는 엄벌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미국과 한국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미국의 사법제도는 마약을 끊겠다는 중독자에게 처벌 대신 치료 기회를 제공한다.

약물법원은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판사, 검사, 변호사 외에 의료인, 보호관찰관 등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다. 판사는 팀의 리더 역할이다. 피고인은 '참가자'로 불린다. 마약 중독자 또는 의존적인 경우를 대상으로 9~18개월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치료 이수하면 '졸업' =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예를 들어 마약으로 검거돼 실형이 선고될 상황인데, 판사가 치료와 구금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한다. 치료를 선택하면 약물법원 재판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약물법원에서는 치료담당자가 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보호관찰관이 수시로 이를 확인한다. 판사는 이 프로그램을 관리·감독한다.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면 혜택이 있지만 소홀히 할 경우 판사가 단기 구금도 명령할 수 있다.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교육이나 주거, 의료 지원까지 할 수 있다. 치료 프로그램을 마치면 법원은 수료증을 발급해준다.

다만 한국에서는 시기상조라는 게 일반적이다. 공론화되지 않은데다가 현재 치료감호와 마약 전문병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추가 예산이나 인력 확보 자체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청년층 중독자가 급증하고, 마약중독이 만성화되기 전에 연구·논의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단순 투약한 20~30대 청년층은 단약 의지가 높아 치료 중심의 약물법원 운영은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법원 외에 법무부, 검찰, 의료인, 심리전문가 등 각계각층이 치밀한 논의를 해야 도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부장판사는 음주운전자를 상대로 일정기간 금주를 하는 경우 양형에 반영하는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해 성과를 거둔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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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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