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1%대로 낮춘다

2022-12-08 11:08:52 게재

학계·IB 전문가들은 "1%대에서 추가 하락할 수도"

세계경기 침체에 내수 부진, 수출·투자도 하락국면

정부가 이달 중하순쯤 발표할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1%대로 낮출 것으로 보인다. 8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정책방향 지표는 정부의 정책목표치라는 의미도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질 수는 없다"면서 "이미 올해보다 내년 세계경제가 더 어렵다는 것이 기정사실이고, 대부분 국내외 기관들이 1%대 성장률을 전망한 상태에서 기재부만 엉뚱한 수치를 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실상 내부적으로 1%대 성장률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지난 6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2023년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한 바 있다.

◆전문가 간담회에서도 의견일치 = 앞서 7일 열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거시경제·금융 전문가들과 간담회에서도 이런 분위기 확연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정부 서울청사에서 내년 경제정책방향 관련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주요 연구기관·학계·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의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내년 한국 경제의 대내외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외 여건 악화에 따른 수출 감소, 금리 인상으로 인한 소비 회복세둔화 등으로 경기 하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했다.

올해 2분기부터 반도체를 중심으로 둔화하기 시작한 수출은 미국·유럽의 긴축 기조, 중국 경제 상황, 반도체 재고 조정 사이클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봤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비의 정상화 과정이 내년 상반기에 마무리되고, 물가·금리 상승, 자산가격 조정 등이 향후 소비 회복세를 제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1%대도 어려울 수도 = 특히 전문가들은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둔화할 것으로 예측하는 한편, 대외여건이 더 악화하면 성장률이 추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1%대 성장률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진단인 셈이다.

추 부총리 역시 전문가들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금융·외환시장과 민생·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 경제가 직면한 복합 경제위기 상황이 내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의 이면에는 정부·재정 중심의 경제 운용에 따른 민간활력 저하, 국가·가계부채 증가 등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도 내재돼 있어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장재철 KB국민은행 본부장, 권구훈 골드만삭스 전무, 오석태 한국SG증권 본부장, 박석길 JP모건 본부장, 신인석 중앙대 교수, 박해식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백인석 자본연구원 거시금융실장, 이성희 전 JP모건 지점장이 참석했다.

정부는 이날 제기된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반영해 이달 중하순쯤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제·민간기관 전망치는 이미 하향 = 정부기관을 제외한 국내·외 주요 전문 기관들은 이미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1%대로 낮춰 잡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을 점치는 곳도 처음 등장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4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8월 2.1%에서 1.7%로 1%대 후반대로 대폭 낮춰 잡았다.

한은보다 먼저 전망을 바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8%, 국제통화기금(IMF) 2.0%, 아시아개발은행(ADB) 2.3%, 신용평가회사 피치 1.9% 등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존 2.3%에서 1.8%로 낮춰 제시했다. 한국경제연구원(1.9%), 하나금융경영연구소(1.8%), 한국금융연구원(1.7%)로 내다보고 있다.

주요 투자기관들은 더 박하다.

노무라증권은 우리나라가 내년 마이너스 0.7%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는 등 국내외 주요 기관 중 유일하게 역성장 전망을 내놨다.

그동안 경제성장률이 1%대 이하였던 때는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0년(-0.7%)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5.1%), 2차 석유파동 영향이 있던 1980년(-1.6%) 등을 제외하고 없었다.

◆수출까지 흔들린다 =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1%대로 낮추고 있는 것은 우리 경기가 하강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주요국의 통화 긴축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가 침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민간소비도 주춤하고 있는데다, 주요 수출국인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까지 둔화되고 있는 등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복합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높아진 이자상환 부담은 소비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등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수출 부진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반도체 수출액이 급감하고 있는 등 내년 역성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1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월 보다 29.8% 감소한 84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 2019년 11월 수출 감소폭 30.9%를 기록한 이후 최고치다. 일각에서는 내년 수출 증가율을 0%대로 예상하고 있다. 설비투자 역시 높은 대외 불확실성 등으로 신규투자 수요가 위축되고 있고, 재고 부담이 높아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등 현재와 같은 증가세가 지속될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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