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올해 침체? 데이터는 엇갈린다

2023-01-27 11:13:15 게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전통의 경제지표 타이밍 예측 못해 … 새로운 예측도구는 검증 안돼"

현대 경제학자들은 경제침체를 예측하는 수많은 도구와 데이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침체 예측은 과학이 아닌 예술에 속한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올해 미국경제의 침체를 예상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잇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침체를 촉발할 것으로 본다.

26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에 따르면, 블룸버그가 설문한 경제학자들의 공통의견은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위축이 통계에 잡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최소한 일자리 측면에선 다가올 경제침체가 이전 침체들과는 다소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많은 국가들은 2분기 연속 GDP가 위축되면 '경기후퇴'로 규정한다. 미국의 경우 침체 여부 판정을 엘리트 학자들에 위탁한다. 이들은 비밀모임을 통해 논의하는데, 일반적으로 침체 여부를 평가하는 데 1년 정도 걸린다. 때문에 월가 금융권과 실물경제가 침체를 몸으로 겪은 뒤 판정이 나오게 된다. 결국 관건은 침체가 발생하기 전 알아채는 일이다.

경제학자들은 침체 타이밍을 예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침체를 예상하는 건 퍼즐을 맞추는 것과 유사하다고 본다. 정부와 민간 데이터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지만 각각의 경제지표는 전체 이미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침체 타이밍 예측, 사실상 불가능

현재의 퍼즐 조각은 아귀가 안 맞는 상황이다. 제조업은 이미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주택시장도 둔화됐다. 하지만 공장과 건설 부문 고용은 여전히 뜨겁다. 26일(미국시간) 발표된 2022년 4분기 GDP 속보치는 2.9% 상승이다. 미국경제의 핵심동력인 소비는 여전히 강하지만, 기업들의 지출과 투자는 줄어드는 상반된 그림이다.

연준 소속 경제학자였다가 현재 '샴 컨설팅'을 창업한 클라우디아 샴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수준으로 지표가 엇갈리고 있다"며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특정 지표값이 나왔을 때 침체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는 침체 분석의 시작점이긴 하지만 완결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샴 침체지표'를 고안했다. 3개월 평균 실업률이 이전 12개월 중 최저치보다 0.5%p 높으면 경제가 침체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이 지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경제는 침체에 진입하지 않았다.

대량해고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지만, 미국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체력은 경제학자들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른 부문에선 침체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소매판매 지표는 1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제조업활동에 대한 여러 지표 역시 지난해 4분기 일제히 하락했다.

ING 수석연구원인 제임스 나이틀리는 "제조업 데이터는 이미 여러달 동안 지속적으로 부정적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며 "상황은 계속 악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전 두번의 경제침체는 '블랙스완'(전세계 경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의 산물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하지만 다가올 침체는 지난 수년 동안 수없이 예고된 위기일 수 있다. 나이틀리 연구원은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할 법한, 전통적인 경제침체가 될 것"이라며 "연준이 40여년 만에 가장 공세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이 추적하는 데이터는 다양하다. 노동시장과 소매판매 통계같은 전통적 도구는 물론 성형수술이나 기업 회계분식 등 색다른 데이터도 있다.

한가지 검증된 침체지표는 장단기 금리역전이다. 미국채 단기물 금리가 장기물 금리보다 높은 상황을 말한다.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침체 중 한차례를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장단기 금리역전이 벌어졌다.

지난해 여러차례 장단기 금리역전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이달 6일 미국 노동시장 통계에서 임금인상이 예상보다 둔화된 사실이 나타나자 미국채 3월물 금리와 10년물 금리 차이가 1%p로 확대됐다. 이는 수십년래 처음 있는 일이다.

경제학자들, 노동시장 데이터에 고민

경제학자들은 노동시장 데이터를 파고들며 냉각을 시사하는 부분을 찾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실업률은 반세기 최저 수준이다. 매달 일자리 증가세는 다소 완만해졌지만 여전히 예상치를 웃돈다. 그리고 기업들의 구인난은 여전하다.

좀더 파고들면 결이 다른 지점도 있다. 지난해 12월 지표에 따르면 임시파견직 일자리가 5개월 연속 감소했다. 경기가 안 좋을 때 가장 먼저 해고통지를 받는 일자리다. 또 지난해 3월 이후 근로시간이 지속 감소하고 있다. 높았던 노동수요가 완화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다.

비즈니스인맥 플랫폼 '링크드인'의 수석이코노미스트 가이 버거는 "미국 노동시장은 이례적으로 강력했다. 내 인생 처음 겪었다"며 "이제는 2018~2019년 수준의 기존 노동시장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금융권과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술 대기업들은 노동자 대량해고를 선언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 노동시장에 1억5370만명의 피고용인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누적 해고자수는 미미하다.

인구가 많은 주를 중심으로 해고통지 사례를 집계한 골드만삭스는 이달 13일 보고서에서 "최근 몇달 간 기업의 해고통지가 늘었지만, 2017~2019년 수준에 비하면 오히려 줄어들었다"며 "해고통지 증가가 순실업자 수의 대폭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거시경제를 예상하는 도구가 대거 보태졌다. 정부가 발표하는 정보와 보다 빈도가 높은 민간 데이터가 합쳐졌다. 팬데믹 초기 봉쇄와 격리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식당예약 애플리케이션 '오픈테이블'의 예약자수나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의 영화 관람자수, 구글 모빌리티 데이터 등을 통해 미국인들의 삶을 추적했다. 이제 전문가들은 이들 지표를 통해 각 가정이 재량소비를 줄이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직까지 이런 지표들이 소비감소를 나타내지는 않는 상황이다.

각 주의 연방준비은행과 월가 금융권, 기타 기관들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자체적인 GDP 예상모델을 개발했다. 미국 비영리 민간단체인 '컨퍼런스보드'가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는 경제침체가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연구기관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예측모델은 올해 확실히 경제침체가 닥칠 것으로 본다. 이 기관의 미국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애너 웡은 "인플레이션 충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소비가 견고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침체 가능성이 80%에 다가섰다"며 "제조업 침체, 주택시장 침체, 기술분야 침체에 들어섰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예측모델도 완벽하지 않아

필라델피아연방준비은행의 주별 경기동행지수는 최소 26개 주의 지표가 마이너스일 때 경기침체가 일어날 것으로 본다. 이 지수는 과거 6차례 경제침체 중 4번의 침체를 정확히 예측했다. 지난해 10월 29개주 지표가 마이너스에 진입해 경제침체를 시사했지만, 이후 데이터가 수정되면서 마이너스를 기록한 주가 15곳으로 크게 줄었다.

각주별 경기동행지수를 활용하는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경제학자 케빈 클리슨은 "어떤 예상모델도 완벽하지 않다"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를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미국경제가 곧 침체에 빠진다면, 역사상 예상에 가장 부합한 침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소매판매는 소비수요를 판단하는 초기 신호다. 지난해 12월 미국 상품구입 총가치는 1년 만에 가장 크게 하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부양현금과 실업급여, 기타 구제조치가 크게 늘면서 가계 저축액이 상승했다. 현재는 2005년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는 미국인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구매력 상실을 메우기 위해 비상금을 꺼내 썼다는 점을 시사하는 신호일 수 있다.

또 미국인들은 더 많은 신용을 동원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연방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신용카드 할부와 학자금 대출, 자동차 구입 대출 등 미국인의 총소비부채는 2008년 이후 가장 많이 늘었다. 반면 대출 연체는 2019년보다 더 낮은 상황이다.

독자적 대안지표 개발

컨퍼런스보드가 미국 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거의 모든 CEO들이 올해 경제침체를 예상했다. 대표적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 CEO 브라이언 모이니한은 완만한 경제침체를 예상했고,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솔로몬도 "올해 경제침체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 경제침체로 인한 손실보전 용도로 10억달러 이상을 확보해둔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펩시콜라나 타겟, 월마트 등 소매업체와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하는 기업들의 동향을 특히 주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다음달 2022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경제 부침 예상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독자적인 대안지표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남성용 속옷 판매를 특히 주시했다. 속옷은 1년 내내 판매되는 상품이지만, 경기가 안좋을 땐 남성용 속옷 판매가 줄어든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미국 남성용 속옷 판매 성장세는 둔화됐다. 올해도 계속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맥주와 립스틱 역시 과거 경제침체를 예측하는 데 동원된 상품이다.

인디애나대와 미주리대 연구팀은 최근 논문을 발표했다.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기업이 늘면 경제침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주장한 논문이었다. 연구팀은 'M스코어'를 활용했다. M스코어는 인디애나대 켈리 경영대학원 메소드 베니시 교수가 만든 수학모델로, 한 기업의 8가지 재무비율을 활용해 기업의 회계조작 여부를 측정한다. 엔론사 회계문제를 찾아낸 유명한 모델이다. 두 대학 연구팀은 기업의 회계조작이 늘어날 경우 경쟁기업들이 회계조작 기업들을 따라잡으려 노력하면서 업계 전반에 경제환경 오해와 과잉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베니시 교수는 "경제에 대한 오해가 늘어나면 현실적인 파급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M스코어에 따르면 올해 경제침체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경제활동이 둔화될 가능성은 있었다.

미 애틀랜타 소재 '트루이스트 투자자문' 미국 선임 전략가인 마이클 스코델레스는 코높이기나 주름개선 수술 등 선택적 미용성형에 대한 지출을 눈여겨본다. 미국 미용성형업계는 2021년부터 호황을 맞았다.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이 늘고, 줌 화상회의를 활용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수술 후 회복시간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코델레스 전략가가 미국 미용성형업계에서 확보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수술예약이 쉬워졌다. 소비자들이 비필수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흐름을 시사한다.

스코델레스 전략가는 "모든 이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동일한 자료를 보고 있다. 따라서 독특한 다른 곳에서 유용한 데이터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