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사망사고에 '주취자안정실' 복원 필요

2023-02-28 11:13:26 게재

입법조사처 "보호시설 부재가 경찰 부담 가중 요인"

경찰관서 내 주취자 보호시설의 부재가 경찰의 부담을 가중시켜 주취자가 안전사고나 범죄 대상으로 노출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과거 경찰관서에서 운영됐던 주취자안정실을 복원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주취자 보호·관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주취자 관련 112신고 건수는 연간 97만6392건에 달했다. 이는 월평균 8만1000건을 상회하는 수치로 2000여개 일선 지구대·파출소가 처리하는 월평균 건수는 40건에 이른다. 특히 코로나19로 2020년 90만여건에서 2021년 79만여건으로 줄었던 주취자 관련 신고는 방역조치가 완화되면서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에는 응급의료 대상이 아닌 주취자를 보호할 마땅한 시설이 없는 게 현실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하거나 경찰관서에 보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2000년 '주취자안정실운영규칙'을 마련하고 경찰관서에 주취자안정설을 설치·운영한 바 있다. 하지만 강제구금 등 인권시비와 응급상황 대처 곤란 등을 이유로 2009년 전면 폐지됐다. 이후 경찰은 2012년 국공립 의료시설을 중심으로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설치된 주취자응급의료센터는 21개소, 병상수는 총 48개로 지난해 연간 이용자 수는 6332명이었다. 그러나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주취자는 응급의료가 필요한 경우로 제한된다. 의료진이 단순주취자로 판단하면 센터 인계가 어렵고 경찰서 내에도 주취자 안정시설이 없어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술이 깰 때까지 대기하는 형태로 보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고서는 "경찰관서 내 보호시설 부재가 초동조치 이후 후속절차에 대한 경찰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러한 부담이 경찰의 소극적 대응으로 이어져 방치된 주취자가 안전사고나 범죄 대상노출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과거 폐지됐던 주취자안정실의 복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만 과거 주취자안정실은 외관상 유치장과 차이점을 찾기 어렵고 의료적 보호체계가 미흡해 보호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만큼 실질적인 보호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엄격한 시설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경찰서 및 경찰본부에 보호시설을 설치하되 보호자 친화적 환경, 자해·부상 방지시설 등 엄격한 시설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경찰 뿐 아니라 소방, 응급구조대 등도 보호조치의 주체가 되고 이동식 주취자 보호소나 간이 주취자해소센터를 운영해 연말 등 주취자가 많은 시기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의료시설의 과부하를 방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주취자에 대한 보호조치 전 응급의료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의사 등 의료전문가 개입을 제도화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경찰관 직무집행법에서는 응급구호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경찰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기고 있어 주취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보고서는 아울러 응급구호 대상이 아닌 주취소란자·주취폭력자에 대해 경찰의 보호 뿐 아니라 제재권한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경찰의 경고·제지에도 지속적인 주취소란행위를 하는 경우 공중의 생활안정과 범죄 예방을 위해 일시적으로 격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실제 주취 중 범죄는 전체 강력·폭행 범죄의 약 30%를 차지한다.

보고서는 "주취자 문제는 일선 경찰관의 일상이 될 정도로 양적으로 과중한 측면이 있지만 발견, 보호, 처벌, 치료, 후생 등 복합적 성격을 갖고 있어 경찰 단독으로는 근본적 해법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실효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 마련을 위해 자치단체, 소방, 의료기관 등 유관기관의 연계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경찰이 방치한 주취자가 저체온증과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경찰은 '주취자 보호조치 개선 태스크포스'를 발족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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