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국민참여재판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

2013-10-30 11:05:06 게재

지난 28일 전주 지방법원에서 안도현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안 시인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 공표죄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결과는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 무죄 평결이었다. 그러나 담당 재판부가 평결과 견해가 다르다며 이례적으로 선고를 연기해 논란이 거세다.

일부에서는 전주지역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86%의 압도적 지지를 보낸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평결 당시 문 의원이 방청석 앞자리에 앉아 배심원들이 무언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편다. 이 무언의 영향이 배심원들의 감정에 작용해 '감성 재판' 내지 '여론재판'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거사건이나 시위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전문성을 가진 판사들이 재판을 할 수 있게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에서 배제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참으로 평결에 참여한 전주 시민들을 우민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의 민주화'를 모토로 2007년 6월에 제정·공포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도입되어 2008년부터 시행되었다. 도입 초기에는 살인죄 등 중죄사건들에 한해 피고인이 원할 경우 배심원 재판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 지역사회의 시민들로 배심원을 선정하여 재판에 참여하게 하고 유·무죄에 대해 권고적 효력을 가지는 평결을 내리면, 판사는 이 평결을 존중하면서 유·무죄 여부를 확정한 후 형량을 정하고 판결을 내린다.

국민참여재판의 접수건수나 진행건수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의 발표에 의하면 그 동안 국민참여재판 접수 건수는 2008년 233건에서 작년 737건으로, 국민참여재판 진행 건수는 2008년 64건에서 작년 274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대법원도 배심원단 판단 존중해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그동안 배심원단의 평결과 판사의 판결이 다른 경우는 평균 7%대에 불과했다. 법에서는 배심원단의 평결에 권고적 효력만 인정했지만, 일선 재판에서 판사들이 배심원단의 평결을 존중한 결과다. 특히 대법원은 1심에서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무죄평결이 내려진 사건을 2심 재판부가 유죄로 뒤집자,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함부로 1심의 배심원 평결을 뒤집을 수 없다면서, 다시 2심의 유죄판결을 뒤집은 바 있다. 대법원도 배심원단의 판단을 존중한 것이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작년 7월부터 일부 중죄사건이 아니라 1심 형사합의부의 모든 사건으로 그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법무부도 얼마 전 국민사법참여위원회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고 이를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배심원단의 평결이 헌법, 법률, 대법원 판례에 위반되는 경우 등에만 판사가 배심원 평결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게 하여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더 강화했다.

또한 피고인의 선택이 없어도 검사의 신청과 법원의 결정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열 수 있게 하여 국민참여재판의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따라서 대법원이나 개정법률안이 추구하는 방향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판사의 법정' 아니라 '국민의 법정'

오히려 정치적 사건일수록 국민참여재판이 더 필요하다고 필자는 믿는다.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정치적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의무화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처럼 경직되고 관료화된 사법부 피라미드 속에서 '승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직업법관이야말로 외압에 취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사건에서는 일반 시민의 상식에 입각한 배심원의 판단이 훨씬 더 중립적일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 사건의 재판이 국민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제도가 도입되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제한'이 아니라 '확대·강화'되어야 한다. 사법권도 애초에 주권자인 국민이 법원에 위임한 권력이다. 국민참여재판이야말로 신성한 법정이 '판사의 법정'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의 법정'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