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등장하나

2013-11-07 11:13:41 게재

'한국사 수능 필수' 대통령 발언에서 '국정교과서 전환 필요' 국무총리 답변까지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한 언론사의 왜곡된 여론조사를 거론하며 '한국사 수능 필수'를 주문한 이후 우리 사회는 유례 없는 역사 논쟁에 휩싸였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사실 오류가 버젓이 게재된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부 검정을 무사 통과해 논란이 일었고, 이에 대한 수정·보완을 놓고 정치권과 학계가 치열한 대립 양상을 빚고 있다.

5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기까지 5개월 가까이 역사 논쟁을 관통하는 흐름은 바로 '우편향 국정 한국사'의 등장 가능성이다.

이에 대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윤관석 의원(민주당·인천 남동을)은 "역사왜곡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 "수능으로 딱 들어가면…" = 지난 6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 "교육 현장에서 진실을 왜곡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는 '북침'의 의미가 북한이 침략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을 침략한 것인지 응답자들이 헷갈린 데서 비롯한 해프닝이었다.

한 달 뒤인 7월 10일 박 대통령은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위원실장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한국사가 수능으로 딱 들어가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라고 못을 박았고, 교육부는 이에 호응해 8월 27일 대입수능 전면 개편을 통해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일단 '모든 고교생이 한국사를 배워야 한다'는 형식적 틀을 마련해 놓은 셈이다.

이후 교학사 한국사를 중심으로 역사서의 왜곡·오류 논란이 사회를 강타했다. 지난 8월 30일 교학사 등 8종 한국사에 대한 교육부의 최종 합격본 결정 공고 이후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교학사 교과서가 역사를 주도했다고 보는 지배층의 역사를 중시하며,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독재와 친일까지도 긍정이라는 명분으로 왜곡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 이에 교육부는 9월 11일 "8종 한국사 교과서 모두 우편향·좌편향 문제가 있다"며 수정·보완 방침을 발표했다.

엿새 뒤인 17일 박 대통령은 "교과서가 이념 논쟁의 장이 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논란이 반복되는 원인을 검토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 앞서 마련된 '한국사 수능 필수'라는 형식적 틀에 부합하는 내용적 수정을 시사하기에 이른다.

우파학자가 장악한 역사기관 = 이에 발맞춰 한국사와 관련한 기관도 우파 인사들로 채우는 상징적 사건이 벌어졌다.

10월 1일 "이승만은 세종대왕과 맞먹는 유전자"라는 신념의 우파 역사학자 유영익 전 한동대 석좌교수가 국사편찬위원장 취임했고, 일주일 뒤인 8일에는 "박 대통령은 선덕여왕"이라고 칭송한 우파 역사학자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여당을 중심으로 불거지던 '한국사 국정교과서 전환 필요' 주장이 교육 수장의 공식 발언으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4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우편향 논란이 일고 있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 "나머지 7종 교과서도 일부 좌편향 문제가 있다"며 "한국사 교과서는 검인정이 아닌 국정으로 발행하는 것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국정 전환에 불을 지폈다.

이어 23~25일에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사 28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80.6%(232명)가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 체제에서 국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표본이 워낙 적고, 보수적인 교총회원들로 이뤄진 조사라 '신뢰도에 의문이 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급기야 정홍원 국무총리는 5일 열린 국감에서 "국정교과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워낙 다양한 역사관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통일된 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관석 의원은 "친일·독재 미화 내용을 담은 교학사교과서가 검정에서 통과하고 교육부는 부실투성이 교학사교과서를 수호천사처럼 지켜내려고 한다"며 "이승만 찬양론자인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 국내 최고의 한국사연구기관의 수장을 맡아 역사왜곡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나리오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국정교과서는 박정희 정권 때 독재를 합리화시키고 단일화된 내용이 학생들에게 전달되도록 검정 체제였던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시켰다"며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교과서 선택의 자유마저 빼앗고, 왜곡된 역사를 정권 입맛에 맞게 바꾸어 가르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정교과서 전환 흐름은 서유럽을 순방중인 박 대통령이 귀국한 이후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중반부터 불거진 역사 논란이 결국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국정 한국사의 등장'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5조에 따르면 국정도서는 교육부가 편찬한다. 교육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국정도서는 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에 위탁해 편찬할 수 있다.

현재로선 유영익 위원장이 이끄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위탁 받을 기관으로 가장 유력하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을 찬양 미화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등장이 단지 기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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