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로 박탈된 '애도' 돕는 장례식장 본연의 모습 회복

2022-02-07 11:17:27 게재
이범수 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

얼마 전 일간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다.

화장장 복도 저편에 흰 방호복 차림의 장례지도사와 화장을 앞둔 명정을 덮은 영구(靈柩)가 보이고, 복도 가운데를 가로막은 빨간 차단줄 이쪽 복도 바닥에서 돗자리도 없는 찬 바닥에 제수 차림도 없이 유족들이 발인전(奠)을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코로나19로 고인을 존엄히 모시던 상장례 절차들이 생략되고 있는,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 우리 사회는 단지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망자 시신을 마치 감염병의 온상인 것처럼 낙인찍고, 남은 이들과의 마지막 한 조각 애틋한 이별의 자리마저 제한했다. 환자의 사망으로 숙주가 보유했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시간이 지나면 궤멸할 수밖에 없음에도 코로나19 공포가 일으킨 아이러니이다.

코로나19로 몰린 우리 사회가 두려움과 공포에 압도당하는 바람에, 유족에게 절실한 '상실에 대한 지지'를 해주지 않고 오히려 박탈한 것이다.

심리적 화상 입은 유족 지지해야

임종을 앞둔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함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열망이 자연스럽게 이행되도록 임종이라는 의례 절차로 엮어준다.

유족은 방금 전까지 곁에서 살아 숨 쉬던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염습의 절차에서 지켜보려 하고, 끝내 덮개가 닫히면 고인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어 입관의 자리에서 고인에게 못다한 얘기를 풀어내며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나누려한다.

화장 후에는 고인을 한 줌의 뼈로 안을 수밖에 없음을 유족이 미리부터 애통해 하기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화장터로의 발걸음을 발인이란 절차로 돕는 것이다. 이것이 상장의례의 본분이다. 그러므로 상장의례의 절차와 과정은 애도의 과정을 밟게 해주는 틀이다.

유족은 심리적으로 화상을 입은 사람이라 한다. 심리적 화상에 발라줄 치유 연고는 주변 사회가 그들을 충분히 지지하고 애도하도록 도와주어 애도의 과정을 마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상장의례가 필요하고 이를 진행할 공간인 장례식장이 필요하다.

고인과 죽음의 만남, 그리고 살아있는 자와 이별의 통로역할을 하는 장례식장의 역할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고 심오하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사적인 죽음을 사건화하고, 부고로 널리 알리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고인을 기억하게 한다. 장례식장은 유족의 사별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지지를 모으는 중심기지 역할을 한다.

이별의 시간과 공간 필요

고인과 유족에게 빈소라는 공간을 제공해 고인과 나누었던 삶을 사색하고 정리하고 기억하여 소유화하는 것에 온전하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적합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유족은 고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사별의 슬픔과 고통을 마음껏 드러내며 애도의 과정을 밟게 된다. 장례식장은 단순히 시신을 모시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심리적, 철학적, 영적, 종교적 공간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에도 최소한의 상장의례 절차는 이뤄져야 한다. 상장의례는 애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는 지난 1월말부터 코로나 사망자에 대해서 '장례 후 화장' 절차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감염위험을 배제할 수 있는 수준의 세부 지침도 마련됐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장례식장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애도의 과정을 도와줄 장례식장이 없다면, 장례식장의 기능과 역할이 마비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고인을 모실 곳을 못 찾은 유족들은 길 위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인과 유족 간에 적절한 이별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유족의 일상과 삶의 회복을 도와주는 장례식장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