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디지털교과서 도입 제동…국회 싱크탱크 “법적 근거 미비”
국회 입법조사처, 헌법 ‘교과서 법률주의’ 위배 가능성
‘교과용 도서’ 범위에 ‘AI소프트웨어’ 포함 ‘불분명’
여론조사·국민청원 “부작용·해외사례 고려 재논의”
“법제화 필요 … 먼저 ‘교과용 도서’보다 ‘교육자료’로”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정부의 AI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해 ‘법적 근거 미비’를 지적하는 검토보고서가 나와 주목된다. 심지어 헌법 위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국회 싱크탱크인 입법조사처는 21일 ‘AI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성격과 입법적 과제―AI디지털교과서는 어떻게 교과용 도서가 되었나’ 보고서를 통해 “교육부가 추진하는 AI 디지털교과서는 현행 대통령령 규정 등 법적 근거가 미비한 점이 있다”며 “면밀하게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AI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에 먼저 도입하고 2028년까지 대상 학년과 교과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 교육위에서는 교육부의 AI디지털 교과서 도입 정책과 관련해 ‘성급한 결정, 시행’을 지적하면서 시행됐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이 지목해왔다. 현장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반대 목소리도 제기됐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AI디지털 교과서 도입과 관련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위 법안소위에 회부됐지만 지난해 11월에 한 차례 심사되다가 다수의 반대의견에 부딪혀 논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면서 별도의 검증할 만한 시범사업 없이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 싱크탱크인 입법조사처가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나선 것이다. 충분히 교사, 학부모 등의 의견을 수렴해 교육법을 바꾸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27년 전 시행령 위임 취지와 배치 =
김범주 교육문화팀 입법조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서 정한 교과용 도서의 범위가 위임입법의 한계 내에 있는지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 규정의 ‘교과서’ 정의에 ‘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포함했다. 정부가 AI디지털교과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보는 근거다. 하지만 김 조사관은 헌법(제 31조 6항, ‘학교교육 ……은 법률로 정한다’)을 근거로 ‘교과서제도 법률주의’ 원칙을 제시하며 “교과용 도서의 범위 등 기본적 사항에 대해 입법자가 직접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 75조에 따른 ‘포괄 위임입법 금지의 원칙’ 위반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27년 전인) 1997년, 교육법을 개정해 ‘교과용 도서’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한 당시 입법자의 의도는 ‘교과용 도서’를 ‘녹음·비디오테이프 등’과 묶어 보급하도록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장래에 발생하게 될 다양한 학습 수단을 모두 교과용 도서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인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다른 법령에서 ‘도서’의 범위에 전자책과 같은 전자출판물 등 범위를 초과해 규정한 입법례가 없다”며 “‘도서’는 문언적 의미는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모법 규정에 따른 ‘교과용 도서’의 범위에 ‘지능정보화 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가 포함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해외는 왜 아날로그 교육방식, 재도입하나” = 그러면서 헌법과 법률로 교육 관련 사항을 규정한 이유로 “일시적인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집권자의 통치 의도에 따라 교육이 수시로 변경되는 것을 예방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했다.
김 입법조사관은 “교육부가 2025년부터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회에 이를 유보해달라는 국민동의청원이 접수되고 교육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찬반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 사용 결정을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최근 학부모 인식조사에 따르면 82.1%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 절차가 필요하다고 응답하고 있는 만큼,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관하여 국회는 국민의 요구와 기대를 수렴하기 위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의 2025 AI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 5만6605명의 동의를 얻어 지난달 27일 국회 교육위에 부의된 만큼 “국회가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청원에서는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성장기 어린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과 부작용이 큰 만큼 아날로그적 교육방식을 재도입 중인 해외사례를 충분히 고려해 디지털교과서의 사용결정을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입법조사관은 “교과용 도서에 관한 중요사항을 법률에 직접 규정하고 교과용 도서의 ‘범위’에 관한 규정을 정비해 장래에 발생하게 될 다양한 수단에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1949년부터 사용된 ‘교과용 도서’라는 명칭 규정을 정비하는 등 교과용 도서 제도 전반을 점검하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먼저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도입되도록 하고 향후 법적 정비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친 뒤 현장에 안착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AI디지털교과서를 ‘강제성’ 있는 교과용 도서보다는 우선 선택 가능한 ‘교육 자료’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