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청년’ ‘간 노인’…노화, 장기마다 달라

2024-11-27 13:00:08 게재

스탠퍼드대 연구진, 각 장기의 생물학적 나이 분석 … “장기 수명, 가변적이라는 점 중요”

미국 스탠퍼드대 과학자들은 동일한 DNA로 태어나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 실험용 쥐들이 노년기에 왜 그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어떤 쥐는 인지테스트를 잘 통과하고 달리기 바퀴를 타고 뛰어다닐 수 있었다. 다른 쥐들은 간단한 작업도 잊어버리고 여기저기서 휘청거렸다. 유전적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쥐들이었지만, 노년기의 모습은 뚜렷하게 달랐다.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 “스탠퍼드대 과학자들은 생쥐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밝히는 시도를 통해 노화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며 “이들은 ‘장기 노화(organ aging)’라고 부르는 새로운 연구영역을 열었다. 이는 우리 몸의 특정 장기가 다른 부분보다 더 일찍 노화되기 시작하면 어떤 질병이 생기고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핀다”고 전했다.

한때 노화는 우리 몸의 모든 부위에 한꺼번에 영향을 미치는, 꾸준하고 예측가능한 양적·질적감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노화는 훨씬 더 우연적으로, 어쩌면 우리가 노화를 인지하기 훨씬 전에 신체의 특정 장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스탠퍼드대에서 해당 연구를 주도한 오세휘 박사후 연구원은 “이번 연구결과는 노화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생물학적 나이 vs 생년월일

노화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규칙하다. 스탠퍼드대 ‘뇌 회복력 연구’ 책임자로 장기노화 연구의 선임저자인 토니 와이스-코레이는 “유전적으로 동일하고 같은 음식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자란 동물은 모든 것이 똑같지만 나이에 따라 다른 분자적 변화를 보이며 다른 시기에 다른 기능 저하와 질병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장기노화 연구의 핵심개념은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다. 우리 모두는 생년월일에 따른 연대순 나이를 갖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지난 수년 동안 우리 몸이 얼마나 잘 기능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별도의 생물학적 나이에 대한 정의를 구체화해 왔다. 생물학적 나이는 생년월일보다 많거나 적을 수 있다.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자이자 UCLA 광역 줄기세포 연구센터 소장인 토머스 랜도는 “50대임에도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러한 사람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달력상의 나이와 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과학자들은 기계학습과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해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 수천명과 동물 수천마리의 혈액 및 기타 조직 샘플을 분석한 결과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샘플을 분석해 특정 연령대에서 흔히 나타나는 유전자 활동이나 분자 수준의 특정 패턴에 초점을 맞춰 연령별 유사성에 집중했다. 이러한 패턴은 생물학적 나이의 생체지표(바이오마커)로 사용된다.

장기노화에 대한 최초의 주요 연구 중 하나는 2020년 네이처지에 실렸다. 와이스-코레이 등 연구자들은 모든 연령대의 실험용 쥐 17마리의 유전자 활동과 기타 세포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설치류의 일부 장기는 더 느리게 또는 더 빠르게 노화됐다. 쥐마다 장기마다, 심지어 같은 장기 내에서도 세포마다 노화 정도가 달랐다. 와이스-코레이는 “이 발견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노화는 선형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는 장기노화의 순서가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빠르게 노화되는 장기가 나중에 질병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어떤 장기가 먼저 노화되든 신체의 다른 장기에서 노화를 촉진하는 생화학 물질을 방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음 단계는 쥐 연구를 사람에게 반복해 결과가 비슷한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 같은 특정 장기에서 조직 샘플을 얻는 것이 불가능했다. 와이스-코레이와 동료들은 생쥐를 대상으로 했던 것과는 다른 접근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이들은 2023년 말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생명의 구성요소’인 단백질에 주목했다.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세포에서 생성돼 혈류로 끊임없이 방출되는 수만개의 단백질은 항상 우리 몸을 통과한다. 하지만 일부는 특정장기에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간 세포의 특정 유전자는 간에서만 볼 수 있는 단백질을 생산한다. 뉴런과 폐 세포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장기별 단백질을 분류한 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5676명의 혈액샘플을 분석했다.

정교한 머신러닝 모델을 통해 심장과 폐, 동맥 뇌 지방 면역체계 장 신장 간 근육 췌장 등 11개 장기에 대한 분자적 특징, 노화 관련 특징들을 추렸다. 과학자들은 혈류의 단백질 패턴을 통해 전형적인 40세 간과 50세 간을 구분할 수 있었다. 또 장기의 생물학적 나이와 연대순 나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었다.

연구결과 많은 사람들의 장기가 상대적으로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혈장 단백질에 따르면 5676명의 남성과 여성 중 약 23%가 출생 연령보다 훨씬 오래된 장기를 하나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영향을 받는 장기는 사람마다 달랐다. 과학자들은 이를 ‘노화유형(ageotype)’이라고 불렀다. 다른 장기에 비해 심장이 매우 오래된 사람은 심장노화, 지방 조직이 오래된 사람은 지방노화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화된 장기는 관련 질병의 위험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이다. 중년 이상의 심장 노인은 나중에 심부전 발생 가능성이 다른 사람에 비해 250% 높았으며, 근육 노인은 보행장애 위험이 높았다.

젊은 두뇌의 이점

하지만 5676명의 연구참여자 풀은 젊은 장기의 존재 또는 효과를 탐구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래서 연구진들은 올해 6월 발표한 최신 논문에서 영국 바이오뱅크의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했다. 바이오뱅크에 가입한 40~70세 남녀 약 4만4530명의 혈액 및 건강기록을 수집했다. 연구진은 혈액에서 장기노화 단백질을 분석하고 11개 장기의 생물학적 나이와 실제 나이를 비교했다. 향후 10년 동안 사람들의 질병이나 사망 여부도 확인했다.

앞선 연구의 성과물은 대규모 그룹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남성과 여성의 약 33%가 실제 나이에 비해 ‘극도로’ 노화된 장기를 하나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또 다른 26%는 2개 이상의 극도로 노화된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일부는 노화장기를 8개까지 갖고 있었다.

연구진은 또 장기의 나이와 질병, 수명 사이의 연관성을 다시 한번 발견했다. 심장 노인은 심부전과 심방세동, 폐 노인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 간 노인은 만성 간질환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뇌 노화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졌다. 극도로 늙은 뇌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3.4배 높았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뇌를 가진 사람들은 실제 나이와 같은 수준의 노화를 보이는 뇌를 가진 사람들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81% 낮았다.

젊은 뇌의 이점은 장수로도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젊은 뇌를 가진 사람이 노화된 두뇌를 가진 이보다 더 오래 살았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모든 장기 중에서 노화된 뇌가 사망률을 가장 강력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뇌가 사람의 수명을 조절하는 핵심요소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생물학적 나이 바꾸기

오세휘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장기 수명이 가변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새로운 연구에서 사람들의 장기 나이와 생활방식을 비교했을 때 흡연과 음주를 하거나 가공육을 자주 먹는 사람들은 장기노화가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등푸른생선을 먹는 사람은 젊은 장기를 가질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에스트로겐 복용도 폐경기 여성의 장기노화에 눈에 띄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에스트로겐 보충제를 먹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면역체계, 간 및 동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식이요법과 운동, 호르몬 또는 기타 생활방식 및 의료옵션이 장기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와 방법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사실 우리 장기가 다른 속도로 노화되는 이유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유전과 생활습관, 운, 또는 이 모든 것의 일부 또는 전부가 원인일 수 있다.

오 연구원은 “그럼에도 우리의 노화 유형을 아는 것은 건강 관련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재 증상이 없더라도 자신이 심장노화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심장검사를 더 자주 받고 초가공 식품을 줄이고 하루에 30분 이상 걷는 등 식단과 운동의 변화를 줄 수 있다. 근육노화인 사람은 세포 수준에서 근육 건강을 증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할 수 있다.

생물학적 노화시계에 관한 세계적 전문가 중 한명으로, 미국 생명공학 스타트업 ‘알토스랩스’의 수석연구원인 모건 레빈은 “장기노화 연구는 다양한 시스템에서 노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더 세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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