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미국 가는 ‘마지막 항만’<라스트 포트> 매력으로 선사 부른다
해수부·BPA “선사들은 마지막 항만에서 화물적재공간 다 채워야”
지정학·기후변화 대응 14조원 투입 2045년까지 진해신항 추가 건설
선박접안 선석수 세계 1위, 네트워크 경쟁력 세계 3위 항만으로 육성
정부가 부산항을 ‘글로벌 톱 3 항만’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하면서 부산항이 가진 ‘라스트 포트’로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11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2045년까지 14조원을 투입해 진해신항을 구축하는 등 글로벌 거점항만으로서 부산항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항만 경쟁력을 세계 3위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글로벌 거점항만 구축전략’을 발표했다. 부산항은 북항에서 신항으로 주 기능을 옮겼고, 진해신항으로 확장하면서 싱가포르와 같은 66개 선석을 가진 세계 최대 항만으로 변모하게 된다.
강도형 해수부 장관은 “세계 2위 환적 물동량을 자랑하는 부산항은 국내 최대의 컨테이너항만이자 동북아 허브항만”이라며 “미국 서안, 중국, 일본 등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노선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고 아시아를 출발해 북미로 향하는 항로의 마지막 항만, ‘라스트 포트’로서 이점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패권경쟁, 글로벌 기업 물류경쟁 전초기지 항만 = 미국이 스리랑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인도·태평양 거점 항만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면서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이어 인도양을 연결하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견제하는 등 항만이 21세기 '오션 그레이트 게임'(해양 지정학 경쟁)의 전초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항만을 둘러싼 경쟁과 판도 변화는 글로벌 기업들도 치열하다. 무역분쟁이 심화하면서 글로벌 물류 시장은 급격히 재편되고, 중동분쟁 등 지정학적 변동으로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선사들은 해운동맹을 재편하고 선박의 크기와 선대를 늘리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항만은 선사들 변화에 대응해 터미널을 대형화하고 스마트 항만을 구축해 글로벌 선사를 유치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미국 해운조선전문미디어 지캡틴은 물동량 기준 세계 최대 선사인 MSC(지중해해운)가 독일 함부르크항을 운영하는 HHLA 지분 49.9%를 인수하는 투자계약을 완료했다고 보도했다. 50.1%의 지분은 함부르크시가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MSC는 독일 정당과 노동조합 등의 우려와 비판이 있었지만 함부르크항 운영지분을 인수했다.
독일에서는 독일선사 하팍로이드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세계 5위 하팍로이드는 세계 2위인 덴마크 선사 머스크와 손잡고 내년 2월 새로운 해운동맹 제미나이를 출범한다.
머스크와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을 구성하고 있던 MSC는 독립하면서 한국의 HMM, 일본 ONE, 대만 양밍이 체결한 ‘프리미어얼라이언스’와 협력하기로 했다. 머스크와 하팍로이드는 올초 새로운 동맹 제미나이를 결성하기로 하고 선박운항 정시성을 높이기 위해 허브항만(거점항만)과 지역항만을 잇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을 발표하면서 동북아에서 부산항 위상이 어떻게 변할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전거 바퀴의 중심축(허브)과 바퀴살(스포크)처럼 물동량을 주요 거점으로 모은 뒤 거점에서 최종 목적지로 배송하는 체계에서 부산항이 동북아 거점항만에 포함될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영국 드류리(Drewry) 발표에 따르면 부산항은 제미나이 12개 메인허브가 아닌 6개 연계허브에 포함됐다. 12개 메인허브는 탄중펠레파스 싱가포르(아시아) 살랄라 포트사이드 다미에타(중동) 알헤시라스 탕헤르(지중해) 로테르담 브레멘 빌헬름스(유럽) 카르데나스 카르타헤나(남미) 등이다. 부산항이 포함된 6개 연계허브는 상하이 선전 부산 붕타우(아시아) 제벨알리(중동) 바르셀로나(지중해) 등이다.
글로벌 2위, 5위 선사 동맹이 붓한항을 기항하지 않게 되면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부산항 위상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부산항만공사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은 “아시아를 출발해 유럽으로 향하는 물동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70%)이고 한국(6.5%) 일본(5.2%) 베트남(4.5%) 태국(3.4%) 순이어서 제미나이가 한국고객을 포기할 수 없고, 부산항에는 전용 셔틀선박을 투입한다”며 “전용셔틀선박을 이용하면 한국 수출화주는 중국 상하이 닝보 칭다오항을 이용하는 중국 화주보다 북유럽(로테르담 기준)까지 3~5일 운송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허브항을 기항하는 모선이 부산항에 들어오는 서비스(부산 → 상하이 → 닝보 → 선전 → 싱가포르)를 이용할 수도 있고, 그보다 운송시간이 단축된 제미나이의 전용 셔틀선박을 이용(부산 → 탄중펠레파스 → 싱가포르)할 수도 있어 부산항을 이용하는 화주의 선택지는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벤 얀센 하팍로이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투입하는 전용셔틀선박은 컨테이너박스 몇 백개를 운송하는 통상적인 피더서비스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한번에 4000~5000TEU를 운송하고 특정 터미널에 화물을 내리고 그 정도 물량을 또 싣는 서비스여서 항만터미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고객”이라고 글로벌 물류전문지 더로드스타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얀센은 “초대형선은 낮은 생산성 때문에 정시성이 많이 떨어져 항만을 건너뛰는 일도 종종 발생하는데 전용 셔틀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 터미널 운영사 수입에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라스트 포트’ 화물 모으는 능력은 선사 수익 결정 = 제미나이의 새로운 ‘허브 앤 스포크 전략’은 부산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북중국 셔틀 노선이 포함돼 있어 미국으로 가는 환적물량이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만공사와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항 환적화물은 6m(20피트) 길이 컨테이너박스 1241만개 규모인 1241만TEU다. 이 중 유럽으로 가는 환적화물은 3.5%, 동북아시아 35.9%, 미국으로 가는 북미향 31.7% 비중이다.
부산항만공사는 부산항이 제미나이의 메인허브는 아니지만 유럽향 화물은 전용 셔틀노선을 이용해 운항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북미로 가는 화물은 머스크가 MSC와 운영하던 ‘2M’에서는 운행하지 않았던 천진·대련~부산, 칭다오~부산을 잇는 전용 셔틀노선 2개를 운영할 예정이어서 중국·부산발 북미 환적물량이 30만TEU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머스크 하팍로이드 등 유럽의 2개 선사가 손잡은 제미나이에게 부산항은 북미로 가는 ‘라스트 포트’로서 포기하기 어려운 항만이다. 이응혁 부장은 “선사는 비싸게 구입한 배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게 경쟁력”이라며 “라스트 포트에서 영업하는 선사 직원들의 임무는 배에 화물을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항로를 운항하는 1만6000TEU급 컨테이너선의 경우 최근 건조가격은 한화로 2500억원 수준인데 25년 감가상각 기준 1일 감가상각료는 2700만원 수준이다. 화물운임은 비슷하기 때문에 선사들은 화물을 확보하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부장은 “마지막 항만에서도 화물을 절반 밖에 못 채우고 떠나는 배는 출발하면서 적자”라며 “라스트 포트는 선사 입장에서 짐을 많이 모을 수 있는 항만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부산항이 아시아에서 북미로 가는 항로의 라스트 포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부장은 “라스트 포트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지리적 위치라면 일본의 요코하마항이나 도쿄항이 더 유리하지만 부산항이 라스트 포트가 된 것은 부산항이 화물을 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부산항의 연결성 지수가 높은 데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 화물만으로 채울 수 없는 배의 화물탑재 공간을 선사들은 부산항과 연결된 인근 작은 항만에서 환적화물을 모아 선박운영효율을 높인다. 부산항의 연결성 지수는 2006년 이후 부동의 4위다.
해운분석기관 라이너리티카에 따르면 부산항에는 매년 60여개 선사가 기항한다. 매주 270~280여개 정기노선을 보유해 싱가포르에 이어 2위다.
세계 1위 환적항만 싱가포르항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라스트 포트, 세계 2위 환적항만 부산항은 북미로 가는 라스트 포트다. 말레이시아의 탄중펠레파스와 포트클랑도 유럽향 라스트 포트 역할을 한다. 모두 세계 5위 안에 위치한 항만들이다.
◆현재 40개 선석 66개까지 확대해 세계 1위 규모로 = 해수부는 유럽으로 가는 중핵 항만, 북미로 가는 라스트 항만 부산항의 매력을 더욱 살리기 위한 투자전략을 마련했다.
늘어나는 물동량을 대비해 2045년까지 14조원을 투입, 진해에 새로운 신항을 구축해 부산항이 싱가포르와 같은 66개의 선석을 운영하게 준비한다. 현재는 부산항 북항, 부산항 신항에 40개 선석을 운영 중이다. 신항에 5개 선석을 더 확보하고 진해신항에는 21개 선석을 건설한다.
해수부는 선박 대형화와 해운동맹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부산항을 메가포트(초대형 항만)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ㄱ
진해신항은 우선 2032년까지 9개 선석을 먼저 건설하고 이후 물동량 추이에 맞춰 12개 선석을 추가할 예정이다. 싱가포르도 건설 중인 투아스항을 합쳐 66개 선석으로 늘어난다.
현존 세계 최대 선박인 2만4000TEU급보다 큰 3만TEU급 초대형 선박이 안정적으로 접안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든다. 기존 부두보다 1.5배 넓은 컨테이너 보관 공간도 조성하기로 했다. 부산항 하역능력은 올해 2120만TEU에서 2032년 3138만TEU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옆에 부두는 비어 있는데 또 다른 부두는 하역을 못해 선박이 기다리는 부두운영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해 진해신항 1단계 9선석은 모두 단일 운영사가 운영할 수 있게 한다. 이곳은 600만TEU 이상의 화물 처리 능력을 확보해 현재 부산항에 기항하는 최대 규모의 해운동맹 물량(650만TEU)도 원활하게 처리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하드웨어 뿐만 아니다. 해수부는 항만경쟁력을 좌우하는 항만연결성지수( Port Liner Shipping Connectivity Index)를 세계 4위에서 3위 수준으로 높이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항만연결성지수는 특정 항구가 얼마나 잘 연결돼 있는지 나타내는 지수로 △항만 간 직항 서비스수 △취항 선박이 운반할 수 있는 최대 화물량 △항구를 연결하는 항로의 운항 빈도 △항구에서 연결 가능한 다른 항구의 수 △해당 항구를 이용하는 해운사의 수 등을 종합해서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평가한다.
2006년 처음 시작할 때 1위를 하며 기준이 됐던 홍콩항은 올해 6위로 떨어졌고 당시 3위였던 상하이항은 2010년부터 1위로 올라서 올해까지 1위를 고수하고 있다. 11위였던 닝보는 올해 2위, 2위였던 싱가포르는 3위로 변했고, 부산항은 부동의 4위다.
이 부장은 “20년 전 부산항 환적비중은 30%였지만 지금은 50%가 넘었다”며 “항만이 선사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면 화물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직기항하는 서비스를 많이 했지만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화물을 다 채우지 못하고 운항하거나 항만에 기항하지 못하고 가는 경우들도 생겼는데 부산항에 들러 피더서비스를 이용하면 화물을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서 환적화물이 늘어난 것이다.
허브항 부산항과 해외 공급망 거점의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해 북미동안 동남아 유럽 등의 해외 물류센터를 현재의 5곳에서 2027년 8곳, 2032년 16곳으로 늘려 우리 중소·중견 기업에 센터 우선 사용권, 물류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원활한 수출입 물류를 위해 미국 동서부 항만 등 주요 거점 터미널의 지분·운영권 확보도 추진한다. 또한 1조원 규모의 국제물류 펀드를 조성해 해외 진출 기업의 금융도 지원한다.
부산항 인근에 축구장 500개 규모(362만㎡)의 항만배후단지를 공급해 글로벌 물류기업도 유치, 유망기업 투자를 유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항만 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2년까지 25%로, 2050년까지 10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친환경 항만 전환도 추진한다. 태양광 연료전지 해상풍력 등 친환경 발전시설을 구축하고 부산항에 메탄올 암모니아 등 친환경 선박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도 만든다. 항만 내 하역 장비의 무탄소 동력 전환을 통해 항만지역 대기질도 개선할 계획이다. 항만의 스마트 전환을 위해서는 5000억원 규모의 스마트항만 구축 펀드를 신설해 지능화 항만조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도 참여한다.
강도형 해수부 장관은 “보호무역주의 강화, 지역분쟁 및 해운동맹 변화 등 공급망 재편은 우리 항만에 위기이자 기회”라면서 “이번에 마련한 글로벌 거점항만 구축전략을 바탕으로 부산항을 글로벌 톱3 항만으로 키워 대한민국 경제를 든든히 지탱하는 글로벌 물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