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사령관, 이첩 보류 명령 권한 없어”
‘채 상병 관련 항명 혐의’ 박정훈 대령 1심 무죄
박 대령측 변호인단 “국방부, 항소 포기해야”
이 전 장관측 “수긍 어려워, 당나라군대 됐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관련해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선고 후 박 대령은 “정의로운 재판”이라며 “오로지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 성원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측은 “사실인정 및 법리적 측면에서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9일 중앙지역군사법원은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대령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박 대령은 2023년 7월 19일 발생한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조사기록의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김계환 당시 해병대사령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항명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방부 검찰단은 같은 해 10월 6일 박 대령을 기소했다.
검찰단은 또 박 대령에게 언론 인터뷰 등에서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왜곡해 그가 부당한 지시를 한 것처럼 일반인이 느끼게 했다는 상관명예훼손 혐의도 적용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사령관은 피고인에게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개별적·구체적으로 명확하게 했다기보다는 피고인을 포함한 사령부 부하들과 함께 기록 이첩 시기 및 방법에 대한 회의와 토의를 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명확한 이첩 보류 명령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해병대 수사단이 실제 사건 기록 이첩에 나선 이후 김 전 사령관이 이첩을 중단하라고 명령했으나 박 대령이 복종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하면서도 당시 이첩 중단 명령은 정당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채 상병 순직 사건은 관련법에 따라 지체 없이 민간 수사기관에 조사기록을 이첩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해병대사령관이 특별한 이유 없이 수사단에 이첩 중단을 명령할 권한이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결국 조사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은 없었고, 이후 이첩 실행 때 중단하라는 명령은 있었지만 이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어서 박 대령의 항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전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제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처럼 피고인 발언이 거짓임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역시 무죄라고 판단했다.
군사법원이 박 대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수사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다만 재판부는 “기록 이첩 보류 명령이 정당한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대령측이 주장해온 ‘VIP 격노설’ 등 외압 의혹에 대해선 맞는지 따져보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권한이 없는 김 전 사령관의 이첩 중단 명령은 이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내용을 수정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는 수사단의 조사 내용을 수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이첩 중단 명령은 특별한 이유가 없고 단지 국방장관의 지시를 따르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면서 “해병대사령관이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을 하게 된 동기와 목적, 국방장관 지시의 의도, 그 방법 등에 비춰볼 때 (이첩 중단명령은)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무죄 판결 직후 박 대령은 “오늘의 정의로운 재판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 성원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있었다”며 “지혜롭고 용기 있는 판단을 내려준 군판사들에게 경의를 보낸다”고 말했다.
박 대령은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게 하겠다’는 (채 상병에 대한) 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기도 하고 험하기도 할 것”이라며 “하지만 저는 결코 흔들리거나 좌절하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는 “남은 문제는 군검찰의 항소인데,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 전 장관을 변호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입기자단에 입장문을 내고 “군검찰이 항소하고 민간 법원에서 시정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명령의 당부를 떠나) 상관의 명령이 부당하다면 군형법상 항명죄가 성립되지 않느냐”면서 “대법원 판례와 명백하게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항명죄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어 이 전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무죄가 선고된 것을 두고 “유일하게 박 대령만 ‘사단장도 처벌 대상인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한다”며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억지 무죄 논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 대한민국 군대는 상관 명령의 당부를 부하가 따질 수 있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따르지 않아도 되며, 상관 명령의 위헌·위법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이행한 부하는 상관과 내란죄 등 공범으로 처벌되는 당나라 군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순직 사건을 조사한 뒤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한편 이날 판결에 국방부 검찰단이 항소하면 2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