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산업현장의 공항 로컬라이저
지난해 12월 29일 엄청난 희생자를 낸 항공참사가 발생했다. 조류충돌, 항공기 결함 여부 등 사고 과정과 원인들은 조사 중에 있으나 사고의 피해를 크게 키운 것으로 추정되는 방위각 시설인 ‘로컬라이저’(LLZ, Localizer) 지지용 콘크리트 블록(콘-블록)의 문제가 드러났다.
해외 항공 전문가들 대다수가 콘-블록에 경악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공항에서 항공기 비상착륙은 예상되는 사건이다. 이 때문에 활주로 시작과 끝 지점 밖은 비상착륙 시 활주로를 지나쳐 버린 항공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RESA)’이 설정된다. 국토교통부 고시에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는 항공기 운행에 필요한 설비 외의 장애물은 없어야 하고, 필요한 설비(로컬라이저 포함)도 항공기 충돌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쉽게 부러지는 재질, 최소 중량과 높이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사고 전에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개량공사를 하면서 ‘부서지기 쉬운 소재를 사용하라’는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는 외부 전문가의 지적에, 국토교통부는 해당 기준이 ‘로컬라이저 장비 자체만 부서지기 쉽게 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 시스템안전 분야 한 석학은 “진정성 없는 똑똑한 무지”라고 평가한다. 사고 건당 희생자수가 적어 사회적 파장은 크지 않지만, 산업현장에서도 같은 맥락의 사고로 인한 희생자가 매년 무안공항 참사 이상으로 발생되고 있다.
본질적 문제는 전문성 부족
항공기는 공중을 날기 위해 가급적 경량 소재로 제작된다. 운항 중 공기압 등의 기체에 작용하는 유압은 설계에 반영되나 발생빈도가 극히 낮은 단단한 물체와의 충돌에 대비한 강성은 중량 때문에 반영되지 않는다. 마치 계란처럼 압력 대비 충격에 약한 구조다. 이런 항공기 특성을 고려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시설 기준은 ‘쉽게 부서짐’을 원칙으로 하고 국토부 고시도 그 취지로 설정돼 있다. 무안공항의 경우와 같은 콘-블록은 존재 자체가 의외라고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토부 행정 공무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제·개정을 포함한 정확한 기준 관리와 규제를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통상의 정부 조직과 운영 시스템으로는 유능한 전문가 육성이 어렵다. 그런 인식에 따라 안전에 필요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해결하고자 2006년에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항공철도사고조사법)이 제정됐다.
항공사고 조사는 항공기의 구조와 기계의 작동, 운항, 공항 관제의 구체적 실제 상황이 머리속에서 그려지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의 영역이고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의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 그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국토부장관은 사고조사위원회를 지휘·감독하되 사고조사에는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에 정했다.
그러나 시행령은 국토부 항공정책실장과 철도국장을 사고조사위원회의 당연직 상임위원으로 정하고 나머지 10인은 비상임 기간직으로 정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시켰다. 이 부분이 콘-블록 방치와 항공철도사고조사법 제정 19년이 지나도록 사고조사를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의 원인이지 싶다.
산업안전에 산재한 ‘콘크리트 둔덕’들
사고예방에 관한 경영 차원의 관심과 기여가 입법 취지인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을 산업안전보건법 보조법으로 만든 시행령과 현장의 실제 상황을 머리속에 그릴 수 있는 경험과 학습없이 열정으로 수사하게 되는 법 집행은 항공안전의 콘-블록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안전규칙 이행으로 상당수 재해가 경감된다. 반면에 추락, 낙하방지 시설 설치와 건설기계 유도와 같은 안전규칙에 정한 의무 수행 중에 매년 많은 근로자가 사망한다. 재해 경감을 위해 정한 기준이 오히려 위험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현장의 물적·인적 상황 변화를 적기에 반영하지 못하는 법규관리 체계와 관련 인력의 전문성이 주된 문제다.
이런 문제인식에서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이 오래 전부터 여러차례 거론돼왔다. 독립 외청의 신설이 쉽지 않고 전문성 확보에도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면 그 대안으로 한국안전보건공단(공단)의 역할 전환을 제안한다. 공단은 1980년 당시 정부와 기업의 안전보건기술 공백 해결이 주된 설립 취지였다.
현재 공단은 기업과 민간 시장이 법규에 정한 기준 이해를 바탕으로 조치 방안을 처방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간의 업무수행을 통해 정부 대비 월등한 전문성을 갖춘 공단이 독립적인 사고조사, 법규를 포함한 기술기준 관리, 산업현장의 실태조사로 역할을 전환하는 것이 안전선진국 구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