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논의
노인생활 절반도 충족 못하는 연금…개혁 속도내야
사각지대 광범위, 취약계층별 소득보장 접근 필요 … 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 등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추진
우리나라는 고령화 추세에 맞춰 노후소득보장과 국민연금 재정화를 위한 연금개혁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정부는 ‘상생의 연금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현행 40%에서 42% 수준으로 상향조정하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국회 여야도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상향 등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2월 중에 보험료 인상 등 모수개혁을 먼저 처리하자는 야당과 기초·퇴직·개인연금 등 다층연금체계 등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여당이 맞서면서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큰 틀에서 개혁 필요성을 동의하고 있으니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하나하나씩 시행해 나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설명절 직전 29개 국민연금법개정안 등을 다루기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참석 전문가들은 노후소득보장과 재정안정화 방안 등에 대해 주요현안과 대안들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인구 중 20%가 65세 이상)로 진입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할 노인빈곤의 해소를 위한 국민연금 개혁 등 대책마련 필요성이 높아진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전공 교수는 지난달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주최 공청회에서 “우리나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급여수준은 국제비교 관점에서 최하위이며 노인의 생활상 필요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며 “대다수 국민연금 수급액이 낮아 고르게 끌어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21세기 인구경제환경에서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면서도 적정 노후소득보장을 구현하는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며 “계층별 다층연금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최저생계비도 못 미치는 연금, 노인빈곤 심각 =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장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에 비해 모든 계층에서 크게 뒤떨어진다.
OECD 2023년 통계에 따르면 평균임금소득자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1.2%로 OECD 평균 42.3%의 74% 수준이다. 저소득자는 기초연금 포함해서 47.6%로 OECD의 56.3%에 미치지 못하고 고소득자는 18.8%로 OECD 33.5에 못미친다.
특히 국민연금 급여액은 보통 노인의 생활상 필요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9차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에서 나타난 2021년 기준 한국 노인에게 필요한 최소생활비 124만2900원에 비해 당시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은 39만7700원에 불과했다. 적정생활비 177만3300만원을 놓고 보면 부족분은 137만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노인은 다른 나라 노인보다 더 많이 일한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7.3%에 이른다. OECD국가 중 1위로 평균의 14.7%의 3배에 가깝다.
노인이 사용할 수 있는 소득 중 자신의 일을 해서 얻은 소득 비중이 48.6%로 높다. 공적이전소득 비중은 30% 수준이다. 공적소득 비중이 미국 39.3%, 일본 50.1%, 독일 68%, 프랑스 78.1% 등 OECD 평균인 55.8%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소득대체율을 높일 이유가 높아진다. 국민연금 현재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해 보험료를 냈을 때 이전 소득의 40%를 보장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42%로 상향을 제시했다. 주 교수는 “2026년부터 소득대체율 상향”을 주장하면서 “소득대체율은 45% 또는 50%로 상향할 경우, 현 2000년생와 2020년생의 급여 감속 폭이 현격히 줄어들고 앞 세대와 보장수준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면 1970년생은 54.6%, 2000년생은 40.7%, 2020년생 40.0 수준이 된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면 각 연령별로 55.4%, 45.0%, 45.0%가 되고 50%로 올리면 56.3%, 49.7%, 50.0%로 소득대체율이 올라간다.
주 교수는 “2055년 노인비중이 41.6%가 되는데 이들의 주요 소득원인 국민연금의 지출은 미래 소비시장에 선순환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구고령화 수준 비해 공적지출 적어 = 반면 공적연금 재정안정화와 노후소득 강화를 위해 보험료는 인상하고 소득대체율 상향 대신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장과 국민연금 인정소득을 높여서 연금을 더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외국제도 운영 현황과 국내외 재정 전망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인상은 불가능한 대안”이라며 “소득대체율을 40% 유지하되 10년 이내 최소 5~6%p 보험료를 인상하고 국민연금 의무납입 연령을 5년 연장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 인상 효과를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위원은 “퇴직 후 재고용활성화 등 노동시장 개혁”을 강조했다.
시민의 의견은 ‘소득보장을 강화하자’는 지난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에서 확인됐다. 제3기 국회연금개혁위원회에서 실시한 연금개혁 공론화(2024년 3월 22일~4월 21일) 결과를 보면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50%할 것인가 40%로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각각 56%, 42.6%로 답했다.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으로 세대갈등 우려가 줄어들 수 있음도 확인됐다. 공론화 결과 20대에서는 53.2%로 보장성강화론을 더 지지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누적적자는 지나친 과장”이라며 “보장성강화안을 채택할 경우 증가하는 적자는 충분히 감당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50%인 보장성강화안을 채택할 경우 GDP 대비 적자는 현행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40%보다 0.8%p 정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또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포함한 공적연금 지출 규모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고령인구 대비 낮은 수준으로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OECD 2023년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직역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지출은 GDP 대비 2030년 5.5% 수준에서 2060년 12.1%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OECD 9.5%에서 10.3%, 유럽연합 8.8%에서 13.9%로 늘어나는 것보다 증가 수준이 빠르고 2060년대는 비슷한 수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인인구비율을 보면 2060년 한국은 43.8%, OECD는 26.4%, 유럽연합은 29.9%인데 이 비중에 따라 공적연금지출을 나누면 한국은 0.28, OECD는 0.39, 유럽연합은 0.46이 된다. 노인1인당 공적 부담은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다.
◆연금크레딧 확대 소득대체 효과 = 국민연금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사각지대 해소가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광범위하다. 우선 적용사각지대를 보면 2024년 6월 기준으로 18~59세 총인구(3010만명)의 34.4% 가량이 국민연금 적용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용제외 674만명, 납부예외자 287만명, 장기체납자 73만명 등이다.
급여 수준 사각지대도 있다. 무연금이 많다. 2024년 8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 약 1006만8000명 가운데 국민연금 수급자는 57.4%다. 절반 가까이 비수급자다. 저연금자가 많다. 같은 시기 기준으로 연금 평균 수급액은 약 65만3000원 수준이다.
유희원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제도 설계가 정규직·전일제 남성노동자 중심으로 이뤄졌고 지속적인 고용관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결과, 특수고용·플랫폼 고용 등 노동시장 변화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문제를 일부 해결하기 위해 크레딧제도와 보험료지원 제도가 있지만 짧은 인정·지원 기간과 낮은 인정소득으로 보장성이 낮다.
이에 △출산크레딧은 출산시점에서 지원하고 가입기간 상한을 없애고 △군복무크레딧은 현역 상근예비역 보충역 대체역에 대해 적용을 확대하고 병역복무기간 전체로 가입기간 인정 △실업크레딧은 생애 최대 인정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지역가입자 지원 소득인정액을 150만원 정도로 올리고 △두루누리사업을 30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 △청년 생애 최초 연금보험료 지원제도를 도입해 해당 연령때 3개월 지원하기 등 제안이 나왔다.
◆사회적 합의 통한 재정안정화 필요 = 연금크레딧 확대하면 연금가입자의 소득대체율 상향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에 따르면 연금크레딧의 소득보장 효과를 고려하면 연금가입자들이 평균적으로 소득대체율 1~3% 증가 효과를 가진다.
노후소득보장의 시야를 국민연금에서 기초연금 퇴직연금까지 확대해 정책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3개 연금을 조합해 계층별로 적절한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계층별 다층연금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장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40년 가입기준 40% 보장수준으로 외국에 비해 낮지 않지만 실제 가입기간이 짧아 실질 연금액이 낮다. 앞으로 연금취약군의 가입기간을 늘리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
기초연금은 2023년 651만명 노인에게 22조5000억원을 급여로 지출했다. 노인빈곤율을 낮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득하위 노인군의 소득보장에 집중하고 대상을 줄이는 최저보장소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은 현재 연금으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1년 미만 노동자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중도인출을 제한해 가입자별 적립금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자동안정화장치’ 도입에 대해 오 위원장은 “시기 상조다. 제도를 도입하면 기계적인 ‘높은 보험료율 인상’과 ‘급격한 급여 하락’ 등 고강도개혁이 나올 수 있다”며 “우선 사회적 합의방식으로 재정안정화를 일정 수준으로 도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