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주민대피시스템 ‘구멍’… 22명 사망

2025-03-26 13:00:14 게재

의성 산불 18명, 산청 산불 4명 사망

상당수 대피하다 차량 · 도로서 숨져

엿새째 이어진 전국동시다발 산불로 최소 22명이 숨지는 등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사망자 상당수가 대피를 못하거나 갑작스럽게 대피하다 차 안이나 도로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주민대피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재난당국의 미숙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로 26일 오전 9시 기준 2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확인된 부상자도 19명에 이른다. 사망·실종자 중 18명은 모두 25일 오후 안동·영양·청송·영덕에서 발생했다. 현장의 급박한 상황 때문에 피해 현황 파악이 더디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망·부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주변까지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대피를 못하거나 긴급 대피 도중 차량이나 도로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영덕에서 25일 오후 확인된 사망자 6명 중 3명은 1차 대피소까지 대피했으나, 이곳까지 불길이 다가오자 2차 대피를 하는 과정에서 차량폭발로 숨졌다. 이들은 거동하기 불편한 실버타운 입소자였다.

같은 날 영양에서 확인된 사망자 3명도 발견 당시 대피를 위해 차량에 탑승한 상태였다. 안동에서 사망한 50대와 70대 여성 2명은 주택 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주민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집에 머물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난당국의 신속한 대피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영덕에서는 26일 새벽 주민 104명이 산불을 피해 대피하던 중 항구와 방파제에 고립됐다가 울진해경에 구조되는 일도 있었다. 산불이 이미 마을 인근에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긴급대피문자를 받은 주민들이 피난 도중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대피 장소를 안내한 지 몇분 만에 장소를 변경하는 소동도 여러 곳에서 있었다.

이에 대해 경북도는 “바람 방향에 따라 불길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 태풍급 강풍에 불길 확산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른 것이 원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이번 산불이 시작된 것은 지난 21일부터이고, 경북 북동부지역을 덮친 의성산불도 22일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숙한 대처라는 것이다.

류상일 동의대 교수는 “강풍 등 재난대응이 어려운 악조건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주민들을 신속히 대피시키지 못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부실대응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이번 기회에 산불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대응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그동안 12시간 사전예보제, 1마을 1대피소 신규 지정·운영 등이 골자인 경북형 주민대피시스템을 홍보해왔다.

한편 중대본 집계에 따르면 이번 전국동시다발 산불로 인한 산림피해면적은 1만7534㏊로 역대 두 번째를 기록했다. 주택과 공장 창고 사찰 등 건물 207동이 불탔다. 이 가운데는 국가지정 보물인 의성 고운사 등 국가유산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교정시설인 경북북부제2교도소 재소자 500여명을 긴급 이송하는 일도 있었다.

이재민도 대거 발생했다. 26일 오전 9시 기준 중대본이 파악한 이재민은 2만7079명이다. 이 가운데 1073명만 귀가했을 뿐, 2만6006명이 귀가하지 못하고 임시주거시설에 머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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