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기후정책 갈림길…탄소가격 개편이 성패 좌우

2025-04-28 13:00:06 게재

배출권 할당량이 국가 감축목표 달성에 큰 영향 … 교통 기반시설 재원 확보 비중 높은 에너지세 한계 보완 필요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나아가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해왔지만 실제로 우리가 체감하는 불편함이 있었는지 심각하게 자문을 해봐야 할 때다. 사회 전반적인 체제 전환 시 종전과 다른 제도로 인한 불편감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현실은 사뭇 달랐다. 2050 탄소중립 실현은커녕 당장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이 어려운 게 우리의 현주소다.”

24일 유승직 숙명여자대학교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이렇게 일침을 날렸다. 기후에너지경제 전문가인 유 교수는 2020년 NDC 설정을 총괄하면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민간부문 최초로 국가에너지 수요 중장기 전망 모형을 개발했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들의 기후환경 공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철학과 방법은 다르지만 탄소중립 사회로의 방향은 보수 진보와 관계없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거창한 계획이 아닌 실제 집행과 현실화다. 환경운동연합은 “탈석탄 조기화를 실현하려면 종합적인 정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약속조차 실현 불가능한 선언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선을 앞두고 기후환경정책 전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다. 수송 부문에서 탄소배출 감축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진은 4월 16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시민들이 이동하는 장면.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느슨한 배출권 할당량은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 =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어하는 가장 큰 수단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K-ETS)다. 배출권거래제로 관리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약 74%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배출권거래제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배출권 할당량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체 할당량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NDC 달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제4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을 앞두고 적정 배출권 할당량을 정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해졌다”며 “탈탄소경제체제로 전환 시 감내해야 할 고통을 외면한 채 또다시 느슨하게 설정한다면 장기적인 측면에서 국가 경쟁력 확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량 설정 기한은 대선 이후인 6월말까지다. 때문에 어떤 정권이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2030 NDC는 물론 2035년 NDC 설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정부는 일정량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간 배출권을 할당한다. 기업은 할당량 안에서 배출활동을 하면서 여유분을 시장에 팔 수 있다. 할당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배출권을 사야 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정부에 배출권을 제출하지 못하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

◆탄소가격 기반 정부 세수, 효과는 미미 = 배출권거래제 적정 가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국환경연구원의 ‘국가 탄소가격 수준 평가 및 NDC 달성을 위한 정책 활용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탄소가격(2021년 기준)은 약 6만7000원/tCO₂로 수송부문의 교통・에너지・환경세 및 부과금 기여가 가장 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순유효탄소가격(NECD)과 순유효에너지가격(NEER) 방법론 등을 기반으로 평가한 결과다. 하지만 배출권 무상 할당과 기타 보조금 등을 추가로 고려해 계산하면 평균 탄소가격은 약 4만6000원/tCO₂으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국가 탄소 가격 구조를 살펴보면 탄소가격 신호가 미약한 에너지세 비중이 높은 반면,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큰 배출권 가격 비중은 낮은 한계가 존재한다”며 “따라서 탄소가격 부과로 조성한 정부 세수가 온실가스 감축 예산에 기여하는 정도도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탄소 감축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국가 또는 부문별 탄소가격 신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간접 탄소가격제인 에너지세와 직접 탄소가격제인 배출권 가격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며 “수송 부문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가 가장 큰 비중(약 21만 원/tCO₂)을 차지하지만 탄소배출 감축보다는 교통 기반시설 재원 확보에 집중돼 있다”고 분석했다.

수송 부문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 개편 시 세금 목적을 명확히 구분하고 온실가스 감축유인 강화를 위해 에너지세와 탄소세를 분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유럽연합(EU)은 수송 부문에 배출권거래제를 확대 적용하고 연료생산 단계에서 배출권 가격을 부과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러한 동향을 반영한 정책 설계도 필요한 시점이다.

◆중대 전환점 맞은 전력체계, 보완 필요 = 전력 부문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국가 탄소가격 수준 평가 및 NDC 달성을 위한 정책 활용 방안’ 보고서는 “유연탄 및 액화천연가스(LNG) 연료에 연료소비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부과목적이 불명확해 탄소무역장벽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연료소비세를 ‘에너지환경세’로 개정해 부과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는 에너지세를 기반으로 세수 약 30조원을 확보한다. 이 중 수송 부문의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포함한 에너지세가 약 23조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전력 부문의 연료소비세는 약 3조8000억원 수준이다.

2022년부터 설치・운용된 기후대응기금에는 배출권 거래제의 유상 할당 수입과 교통・에너지・환경세의 7%가 전입된다. 교통시설특별회계 및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도 일부 재원이 전입돼 2조원 규모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으로 인한 수입은 2022년 약 3188억원, 2023년에는 약 996억원에 불과하다. 전력 부문의 배출권 순구매 비중(2021년 기준) 역시 약 12%에 불과하다. EU-ETS의 경우 100% 유상할당을 한다.

28일 기후환경단체 ‘플랜1.5’는 재생에너지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등 한국 전력 체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의 ‘한국 균등화발전비용(LCOE) 분석’ 결과 에 따르면, 2035년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균등화발전비용은 2023년 수준 대비 최대 41% 감소할 전망이다. 또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균등화발전비용은 38~56% 감소한다고 추정됐다.

균등화발전비용은 △초기자본투자비 △자본비용 △연료비 △탄소가격 등 직접 비용과 할인율을 고려해 추정된 전력생산비용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건설비 △운영유지비 △연료비 등 발전소 지출 비용은 물론 사고 위험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을 반영해 계산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대규모 태양광 발전비용이 원자력보다 낮아지고 고정식 해상풍력은 석탄 발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경제성을 갖출 전망이다. 또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원 균등화발전비용는 38~56% 감소한다고 추정됐다. 재생에너지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이유는 보급 확대로 규모의 경제가 형성됨에 따라 태양광 해상풍력 건설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최창민 플랜1.5 정책활동가는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최하위권”이라며 “다음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신속하게 늘려 NDC 목표 달성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 설명

탄소가격제 = 탄소가격제 기반 정책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에너지세 탄소세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는 탄소배출량에 비례해 가격이 부과되는 직접 탄소가격제에 해당한다.

탄소세는 탄소배출량에 비례해 직접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북유럽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도입 중이다. 에너지세는 연료의 부피 및 질량을 기준으로 가격이 부과되는 간접 탄소가격제에 해당한다. 주로 연료 소비세 형태로 운영되며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에너지 소비 억제 및 정부 세수 확보를 주요 목적으로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