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재해 ‘돌발가뭄’…예경보 사각지대 우려
넥스트 “명확한 정의부터 필요”
기후변화로 폭염 강도와 일수가 증가하면서 신종 재해인 ‘돌발가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 가뭄 예경보 시스템으로는 돌발가뭄을 감지하지 못해 대응책 마련에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돌발가뭄은 기존 가뭄과 달리 고온에 의한 증발량 급증으로 몇 주 만에 빠르게 발달하는 가뭄이다. 이 돌발가뭄은 미국 등 해외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2021년 제6차 평가보고서(AR6)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 유형이 다양화되고 있다며, 돌발가뭄의 존재와 위험성을 강조한 바 있다.

기후·에너지 정책 싱크탱크 ‘넥스트’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기후위기 시대, 돌발가뭄이라는 예고 없는 재난’을 30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돌발가뭄 빈도와 지속기간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명확한 정의조차 없고 대응 기반도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보통 가뭄은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른 기간을 말한다. 국가가뭄정보포털도 가뭄을 ‘진행속도가 느리고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돌발가뭄은 ‘장기 강수 부족’에 기초한 기존 가뭄과 달리 증발산 요소를 추가로 고려하고 복합적이고 빠르게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넥스트는 “국내에서는 돌발가뭄이 학계 논의에만 머물고 있을 뿐 정책 차원에서는 그 정의조차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다”며 “국가 가뭄 통계가 월 단위 예경보를 기준으로 기록∙관리되고 있을 뿐 주간 단위 예경보는 비공식적이고 보조적으로만 활용되고 있어 돌발가뭄에 대한 체계적 감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의 130%에 달했다. 평년은 지난 30년간 기후의 평균적 상태다.
이 보고서에서는 “일반적으로 장마 이후에는 수자원이 넉넉해 가뭄 우려가 줄기 마련이지만 지난해 가뭄 피해는 모두 장마 이후에 발생했다”며 “8월부터 강수량이 급감해 평년의 30% 수준에 머문데다 전국적인 폭염이 지속되며 증발량이 평년보다 136.9%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8월 돌발가뭄으로 농업용수 피해가 발생했다. 역대 세번째로 많은 봄비가 내렸음에도 짧은 장마와 평년보다 3배 긴 폭염일수(31.4일)로 인해 전국 2만2767ha 면적에서 농업용수 피해가 발생했다. 강원 횡성군은 논 면적의 22.8%, 양구군은 밭 면적의 44.9%가 피해를 입었다.
보고서에서는 “피해 발생 시점은 8월 10일부터 22일 사이로, 7월 21일 장마 종료 전후로 계속된 고온 상황과 맞물린다”며 “약 2주라는 짧은 기간에 가뭄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돌발가뭄 특유의 속도감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돌발가뭄 피해는 농업뿐 아니라 생활·공업용수 분야에도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름철 급수 피해 건수를 분석한 결과, 후반기(2016~2024년) 평균 피해 건수가 전반기(2008~2015년)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특히 8월 평균 피해 건수는 1.75건에서 14.67건으로 8배 이상 급증했다. 6월 피해 건수도 20건에서 29건으로 45% 늘었다.
넥스트는 “이러한 시기적 특성은 돌발가뭄의 전형적 양상과 일치한다”며 “8월은 장마가 끝난 후 폭염이 본격화되는 시점이고, 6월은 최근 이른 폭염이 출현하는 시기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해수 넥스트 연구원은 “돌발가뭄은 극한고온 환경에서 몇 주만 비가 안 와도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며 “돌발가뭄은 앞으로 더 심해질 전망인 만큼 하루 빨리 예경보 체계에 돌발가뭄을 편입해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