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 디지털 전환

디지털 생체신호 조기경보 사각지대 막는다

2025-10-28 13:00:19 게재

자기보고식 설문 기반 고위험군 발굴 한계 … “뇌파 맥파 검사, 정신건강 지속 확인 가능”

우리나라 자살률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2.6배에 이르고 2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자살 지표는 10대20대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고 노인층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 높은 발생을 보여 그 심각성을 더한다. 청소년 청년은 학업·취업·관계 문제로, 노인은 경제적 어려움·고립·질병 문제로 자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두세대에서 자살 가능성을 낮추는 게 주요한 전체 자살률을 낮추는 관건이 된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내놓는 등 자살예방정책을 세우고 있다. 자살시도자를 대상으로 즉각·긴급 개입을 강화하고 자살유족 원스톱 지원을 전국으로 확대 하는 등 고위험군에 집중 대응할 계획이다. 여기에 고위험군 조기 발굴과 복합적인 고충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관련해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고위험군을 조기 발굴체계에서 디지털 전환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관련해서 전문가들의 대안 제시를 소개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하루 40명 꼴로 36분마다 한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지난 해 자살사망자가 1만4339명으로 추산된다. 자살문제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적 재난이 됐다. 고위험군을 조기발굴하는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이승환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우리나라 자살예방 정책과 지원이 사후적 개입에 머물러 있다”며 “정신건강 고위험군 조기발굴을 통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반 생체신호 조기경보 체계가 필요하다”고 28일 강조했다. 이어 이 이사장은 “청소년학생, 소방공무원, 교사, 군인, 의료인, 산업재해 취약직군 등은 정신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단순 설문과 사후 치료가 아니라 뇌와 심장이 보내는 신호를 바탕으로 디지털 조기경보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발전소 직원이 비웨이브의 마음결 베이직을 통해 두뇌(뇌파) 건강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 비웨이브 제공

◆현행 선별검사, 비연속적 일회성 한계=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건강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나름의 조기발굴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매년 학생 정서·행동 특성 검사를 시행한다.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대상이다. 1차로 전수 온라인·서면 설문이 진행된다. 고위험군으로 의심되는 학생은 2차 심층평가(Wee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로 연계된다. 하지만 이 검사는 초·중·고교 간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초·중·고로 진학하면 기록이 단절된다. 학생의 발달과 정서적 변화를 이어 파악하기 어렵다. 이를 개선하고 정서·발달 문제를 통합관리하기 위해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제정됐다.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정서·발달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연속적인 지원체계를 가능하게 할 중요한 법적 기반이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기보고식 설문과 일회성 검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성인의 정신건강 선별검사는 보건소, 직장 건강검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국가건강검진 항목으로 시행된다. 만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10년마다 70세까지 우울증 선별검사(PHQ-9 설문지)를 실시한다. 실제 수검률은 40세 이후로는 70% 이상 올라가는데, 20세에는 30%에 그치는 등 20대의 검진참여율이 가장 낮다. 전국민 대상으로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시행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자기보고식 설문에 의존하기 때문에 응답자가 “괜찮다”고 답하면 실제 고위험군을 놓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노인의 경우 우울증 선별검사로 일부 보건소나 치매안심센터, 방문건강관리사업에서 노인우울척도(GDS)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노인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2.5배나 된다. 국가건강검진의 노인기능평가 항목에 간단한 우울 문항이 포함되어 있다.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찾아가는 상담과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지역별 편차가 크고 전체 노인 대상으로 정기적 시행으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 고위험군 사례관리 수준의 관리 역량만 보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자살률이 높은 노인층에서 실제 고위험군 발굴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청년들은 학업 진로 취업 등으로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살예방차원에서 다각적 지원이 필요하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디지털 생체신호, 심리정서 확인 = 기존의 정신건강검진은 모두 자기보고식 설문에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단순하고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하지만 순간적 감정이나 사회적 낙인 우려에 따라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실제 고위험군임에도 스스로 숨기면 조기 발견이 어렵다”며 “특히 학생 검사의 경우 학교급간 데이터 단절, 일반인 검사는 일회성 선별, 노인 검사는 지역기관별 편차라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살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위험군을 놓치지 않고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다. 관련해서 복지부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유해정보 24시간 모니터링 및 차단 활동을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이러한 활동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자기보고식 설문조사에 기반해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생체신호에 기반한 심리정서 상태를 검사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키나 몸무게 지표처럼 정기적이고 연속적인 측정이 가능해 청소년 학생 등의 심리정서 변화 과정을 객관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최근 국제적 연구에서 심박수 변이(HRV), 뇌파 패턴 등 생체신호가 우울·불안·충동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이러한 소견은 국내 연구에서도 구체적으로 입증됐다. 예를들면 간단한 뇌파(EEG)와 맥파(PPG)를 활용해도 정신건강 위험군을 신뢰성 있게 평가 할 수 있다. 약 20.6%의 무자각 집단(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음에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을 찾아 낼 수 있다. 생체신호 기반 정신건강 평가는 기존 설문 대비 3~4배 높은 민간도를 보여 숨어 있는 위험군을 더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설문지와 생체신호 검사를 병합하면 민간도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조기 개입 시 치료 성공률이 70~80%까지 보고된다. 하지만 만성화되면 회복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국내에서 시행한 한국 국가 코호트 대상 연구(2022, Frontiers in Psychiatry)에 따르면 자살 위험군의 경우에도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해 정신과 진료로 신속히 연계하면 자살 재시도 위험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음이 확인됐다.

이 이사장은 “단순히 기분이 어떤가요라고 묻는 시대에서 벗어나, 몸과 뇌가 보내는 객관적인 신호와 설문을 병합 활용해 조기발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밝혔다.

◆고위험군 조기발굴 패러다임 바꿔야 = 디지털 기반의 정신건강 조기경보 시스템은 자살 예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디지털 전환은 크게 3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생체신호를 통해 위험 신호를 실시간으로 즉시 포착 가능하다. 둘째, 자기보고 왜곡을 최소화하고 반복 측정으로 객관적인 동일 자료를 연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셋째, 맞춤형 개입으로 위험 유형과 수준에 따라 상담·치료·디지털 치료제 등 적합한 개입을 쉽게 해준다.

디지털전환이 학생영역에서는 ‘학생맞춤통합지원법’과 연동해 학교급 간 데이터 단절을 해소해야 한다. 성인영역에서는 건강검진·보건소 시스템과 연계한다. 노인 영역에서는 기존 노인 우울선별검사를 디지털 기반 생체신호 평가와 통합하고 전국민 단위의 예방망으로 확장해야 나아가야 한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최근 자살예방정책 추진과 관련해서 “기존 각 부처와 지자체가 추진해 온 자살예방정책을 충분히 수행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비례)은 “우리나라 자살률은 수십년째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고 특히 청년층과 노년층의 자살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도 없이 매우 높지만, 자살예방을 위한 검진방법들은 수십년째 자기보고식 설문과 일회성 검사 등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며 “최근 급격한 발전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 AI 뿐 아니라 디지털 생체신호 기반 심리정서 검사도구들을 최대한 활용해 자살 고위험군을 놓치지 않고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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