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글로벌 팩트체킹 서밋을 가다

해마다 진화하는 팩트체킹(사실검증), 3.0시대 모색한다

2017-07-19 11:00:00 게재

5일 오후 2시를 넘어서자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구글 캠퍼스에 갑작스레 인파가 몰렸다. 올해로 네번째 열리는 글로벌 팩트체킹 컨퍼런스(약칭 Global Fact4)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 온 참석자들이다. 특히 올해는 각 나라 팩트체커들은 물론이고 언론관계자와 학계 인사들, 구글, 페이스북, 위키피디아 등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해 팩트체킹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방안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댔다.

7월 5~7일 사흘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 구글 캠퍼스에서 열린 제4회 글로벌 팩트체킹 서밋(GlobalFact 4)에 전세계 53개국에서 19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 Mario GARCIA 제공


폭발적 성장세 보여 = 53개국 188명. 주최 측인 '국제 팩트체킹 네크워크'(IFCN:International Fact-Checking Network)가 공개한 이번 서밋 참가자들이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제1회 서밋을 시작할 때만 해도 20여개국 40명 남짓했던 참가자가 4년 만에 200명 가까이로 불어났다. 허름한 강의실에서 시작했던 서밋은 거대한 강당을 가득 메울 만큼 커졌다.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기일을 넘긴 뒤 신청한 경우 참석조차 어려웠다는 후문도 들렸다. 기술자들과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특히 올해 서밋에서는 일본 참석자들도 다수 등장했다. 그동안 단 한 명도,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던 일본 참석자들은 한국에서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이뤄진 팩트체킹 활동과 한국 정치변화, 언론상황 등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스피드 미팅 중인 서밋 참가자들 사진MarioGARCIA제공

다행스럽게도 한국 참가자들도 크게 늘었다. 대선을 전후해 맹활약한 서울대 팩트체크 센터(SNU 팩트체크) 정은령 센터장과 JTBC에서 팩트체크 코너를 이끌고 있는 오대영 기자 그리고 기자까지 포함해 모두 3명이 참석했다.

여기에 워싱턴포스트에서 맹활약 중인 한국계 팩트체커 미셸 예희 리까지 따로 만나 4명의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네 번의 서밋 가운데 두 번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참석했던 터라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행사진행 방식도 예년과는 상당히 바뀌었다. 첫날 저녁에 간단한 리셉션만 하던 행사가 이번에는 첫날(5일) 오후부터 공식 일정이 시작돼 2박 3일을 빡빡하게 채웠다. '스피드 미팅'을 통한 상견례 시간도 만들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참석하다보니 스피드 미팅을 통해 인사를 나누는 것도 한계가 분명했다. 세션 중간에 마련된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새로운 참가자들과 인사 나누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디지털 기술진화, 팩트체킹과 만나다 = 2박 3일 동안 빼곡히 마련된 21개의 세션 일정은 잠시 숨 돌릴 여유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다. 각종 사례발표와 강연, 분임토의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올해 세션의 특징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석해 디지털 기술의 진화를 팩트체킹 활동과 연계하는 방안에 대해 제안하고 함께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일례로 구글 뉴스랩, 페이스북, 위키미디어 등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나와서 진화한 기술을 팩트체킹에 활용하는 방안을 소개했다.

또 영국 풀팩트(Full Fact)의 메반 바바카는 "구글과 가짜뉴스 자동검색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올해 말까지 라이브(Live)와 트렌즈(Trends) 두 개의 자동 팩트체크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한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라이브는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각종 의미있는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술이고, 트렌즈는 가짜뉴스 등이 온라인 상에서 유통될 때 이를 모니터링하는 개념이다. 풀팩트는 개발한 기술 툴을 다른 나라 팩트체커들과 공유하는 것에도 관대하다.

듀크 대학의 리포터스랩(Reporter's lab)은 팩트체크된 결과가 구글에 잘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위젯 '셰어 더 팩츠'(Share the Facts)를 소개했다. '셰어 더 팩츠'는 팩트체크를 하는 각 기관이 공유하는 표준형 템플릿이다. 구글이 이미 지난 4월부터 팩트체킹한 기사에 대해 팩트체크라는 꼬리표를 다는 제도를 운용중인데 '셰어 더 팩츠'까지 활용하면서 기사 노출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셰어 더 팩츠'는 영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등으로 서비스된다. 듀크대 빌 어데어 교수가 소개한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클레임버스터'나 아마존의 AI비서인 '알렉사' 시연도 결국 진화한 기술을 팩트체킹과 접목할 수 있는 사례를 통해 팩트체킹의 미래를 가늠케 했다.

제4회 글로벌 팩트체킹 서밋에서 만난 한국 참가자들. 사진 좌측으로부터 오대영 JTBC 기자, 미셸 리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 정은령 SNU 팩트체크 센터장, 본지 정재철 기자.


경쟁마저 뛰어넘는 협업과 연대 = 이번 서밋의 또 다른 특징은 연대와 협력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점이다. 프랑스와 노르웨이 등에서 서로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언론사들이 모여 협력을 통해 팩트체킹한 사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노르웨이에서는 지난 6월 경쟁관계에 있는 일간지와 방송사 4곳이 각 25%씩 지분을 출자해 비영리 팩트체킹 전문 매체인 팍티스크(Faktisk)를 만들었다. 언론인 출신으로 팍티스크 대표를 맡고 있는 헬야 송바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디어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팍티스크에서 생산하는 팩트체킹 콘텐츠에 대해 출자회사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생산한 결과물에 대해서는 출자회사인 노르웨이 공영방송(NRK)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서도 공유된다.

또 프랑스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19개 언론사가 모여 가짜뉴스를 팩트체킹하는 한시적 협력모델 크로스체크를 선보였다. 노르웨이와 마찬가지로 공익을 위해 개별사의 욕심을 잠시 뒤로 미뤄둔 셈이다. 팀 일원으로 참여했던 리베라시옹의 기자 플린 믈로는 "우리가 가진 자료를 경쟁사들과 공유하는 것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이런 종류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흔들릴 수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 = 팩트체킹의 현주소와 향후 전망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특히 세션 마지막 날 발제를 맡은 미국언론재단(American Press Institute)의 톰 로젠스틸은 팩트체킹이 1980~90년대 1.0시대를 거쳐 현재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2.0시대를 살고 있는데 앞으로는 새로운 접근법을 통한 3.0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제안해 많은 공감대를 얻었다. 특히 로젠스틸은 "팩트체크할 수 있는 정치인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알아야할 것이 무엇인가로, 행위자 중심(actor focused)이 아니라 이용자 중심(user focused)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물(발언) 중심의 팩트체킹에서 이슈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공방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팩트체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팩트체킹 역시 해설형 저널리즘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정 어린 비판과 충고도 있었지만 팩트체킹의 미래에 대해서는 참석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상당했다. 행사 실무를 총괄한 IFCN 디렉터 알렉시오 멘잘리스는 서밋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우리의 커뮤니티가 자랑스럽다. 때론 비틀거릴 것이고, 실패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팩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가'라는 질문을 우리가 계속 하는 한 우리의 활동은 계속 될 것이다"라고 소회를 피력했다.

팩트체킹 저널리즘의 국제적 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빌 어데어 교수(듀크대)는 개회사와 폐회사에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팩트체킹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fact-checking will keep growing)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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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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