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칼럼

핵융합으로 가는 열가지 이야기

2023-01-19 12:20:09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

지난달 13일 미국 에너지부 그랜홀름 장관은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내는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핵융합은 청정에너지로 인류의 궁극적인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 알려졌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1. 태양은 거대한 핵융합 공장이다

1초 동안 1㎡의 면적 위로 쏟아져 내려오는 태양의 에너지를 '태양상수'라고 부르는데, 이는 대략 1400W/㎡나 된다. 이로부터 태양이 방출하는 총 에너지를 계산해보면 자그마치 400자(禾+弟)와트라는 듣도보도 못한 큰 숫자가 나온다. '자'는 1조의 1조배나 되는 숫자다. 이 거대한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게 된 것은 비단 100년밖에 안된다. 양성자-양성자 연쇄 핵융합 반응이 그 답이었다.

2. 핵융합 에너지는 깨끗하다

양성자와 양성자는 그대로 뭉쳐지지 않는다. 실제로 뭉쳐지는 것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이들이 합쳐지면 중양성자가 된다. 이 중양성자는 주변의 다른 양성자를 만나 헬륨을 만들 수도 있고, 또 다른 중양성자와도 뭉쳐질 수 있다. 이렇게 핵이 뭉쳐지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핵폐기물이 없다. 물론 중성자에 의해 방사성 물질이 생성되므로 100% 청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3. 무한의 에너지

핵융합의 원료는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다. 중수소는 수소원자 2만개당 3개 정도다. 바닷물의 0.015%가 중수소로 바닷물 총량이 13해(垓, 1조의 1억배)리터 정도임을 고려하면, 중수소의 양은 40조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4. 핵융합을 만드는 법

핵융합을 일으킬 고온 고압을 지상에서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많이 시도되는 방법은 자기장 속에 플라즈마를 가두는 방식이다. 소위 토카막이란 장치를 사용한다. 또 다른 방법은 레이저 빔을 이용해 핵을 가두어 놓는 방식이다.

5. 가정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하다

1960년대 미국 발명가 판스워스와 허쉬는 고전압을 이용해 이온들을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핵융합을 만드는 장치 퓨져를 고안했다. 하지만 이 장치로 대량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6. 핵폭탄보다 더 센 수소폭탄

인간이 만든 최초의 핵융합 장치는 수소폭탄일 것이다. 수소폭탄의 원리는 간단하다. 원자탄을 먼저 터트려 고온고압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중수소와 리튬으로 된 연료가 핵융합을 일으켜 2차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에너지는 원자탄의 수천배에 달한다. 1960년대 러시아가 실험한 수소폭탄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3300개에 해당한다고 한다.

7. 상온핵융합

1989년 미국의 화학자 플라이슈만과 폰즈는 팔라듐 전극을 사용해 중수를 전기분해하는 과정에서 핵융합이 발생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팔라듐은 수소를 다량 흡수할 수 있는 금속이다. 인류의 에너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장밋빛 소식에 전세계가 들썩였다. 하지만 그들의 실험은 거짓으로 밝혀졌고, 지금까지 대표적인 연구부정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8. 한국의 핵융합

한국이 본격적으로 핵융합연구에 뛰어든 것은 1995년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200억원이라는 거대한 연구비를 지원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07년 완공된 케이스타(KSTAR)는 그 이듬해 2008년에 최초로 플라즈마 상태를 만들어 낸다. KSTAR는 현재 1억℃가 넘는 플라즈마 상태를 수십초 동안 유지할 수 있다.

9. 국제열핵융합실험로 이터(ITER)

1985년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소가 함께 핵융합 기술을 개발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현재 ITER는 미국 유럽 러시아 한국 일본 중국 인도가 참여하는 초대형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프랑스의 카다라슈에 건설되고 있는 ITER에는 KSTAR에서 개발된 기술들이 속속 채택되고 있다. 토카막 방식의 핵융합장치에는 한국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0. 레이저로 핵융합에 성공하다

2022년 12월, 미국의 국립점화시설은 투입된 에너지보다 50%가 더 많은 에너지를 핵융합을 통해 얻어내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레이저빔을 사방에서 쏘아 한군데로 집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는 레이저로 투입된 에너지와 핵융합으로 발생한 에너지를 단순 비교한 것일 뿐, 시설을 가동하기 위한 에너지까지 고려된 것은 아니므로, 지속적인 점화가 필요한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