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 오염 위해성평가, 민간은 ‘그림의 떡’
법은 허용하는데 시행령에서 공공부문으로 한정
준비 안된 정화체제 전환, 시장 혼란 커질 수 있어
‘토양 오염 정화체제의 개편’. 불소 규제 완화 뒤 토양 오염 정화 시장에서는 위해성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창신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에 대한 위해성평가를 공공기관에서만 하도록 제한하지 않는데, 실행하는 측면에서 해석을 좁게 하다 보니 사실상 민간영역에서는 위해성평가를 할 수 없도록 했다”며 “법에 없는 내용을 시행령에서 규정하면서 본래 취지가 희석된 측면이 있다”고 18일 지적했다. 이어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위해성평가 제도에 대해 정부가 좀 더 의지를 가지고 현장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미 법에 명시되어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집행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공학과 법학을 전공한 박 변호사는 토양환경기사를 취득하기도 했다.
위해성평가는 환경 유해 인자가 환경에 배출되거나 생활 환경에서 사용될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추정하는 것이다. 위해성평가 결과를 토양정화 범위와 시기 및 수준 등에 반영할 수 있다.
◆위해성평가 공공은 되고 민간은 안돼? = 우리나라에 토양 위해성평가 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2005년이다. 이후 2011년에 위해성평가 기관 지정 근거를 신설했다. 도입된 지 20년이 지난 제도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건 2023년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가 환경부에 불소 규제 관련 권고를 하면서부터다. 당시 규제심판부는 “중장기적으로 선진국과 같이 부지별 실정에 맞게 토양오염을 관리하는 위해성평가 제도 중심 정화체계로 전환을 추진하라”고 밝혔다.
자연적으로 이미 토양 속에 있는 물질인지, 인위적인 오염인지를 구분해 차별화된 관리를 하는 게 핵심이다. 기존 정화업계는 위해성평가 신뢰성을 거론하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더불어 사실상 공공영역에서만 할 수 있는 위해성평가 제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토양환경보전법 제15조의5제1항에서는 ‘환경부장관, 시ㆍ도지사, 시장ㆍ군수ㆍ구청장 또는 정화책임자는 제23조의2제2항제1호에 따라 지정을 받은 위해성평가기관으로 하여금 오염물질의 종류 및 오염도, 주변 환경, 장래의 토지이용계획과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고려하여 해당 부지의 토양오염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위해의 정도를 평가(이하 “위해성평가”라 한다) 하게 한 후 그 결과를 토양정화의 범위, 시기 및 수준 등에 반영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제15조의5제2항제4호에서는 위해성평가 대상 중 하나로 ‘자연적인 원인으로 인한 토양오염이라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입증된 부지의 오염토양을 정화하려는 경우(제15조의3제3항 단서에 따라 오염토양을 반출하여 정화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를 제시했다.
하지만 시행령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항목을 ‘도로 철도 건축물 등 시설물 아래의 오염토양(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공기관이 정화책임자인 경우로 한정한다)을 정화하려는 경우로서 환경부장관이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위해성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제한했다. 사실상 민간에서는 뛰어들 여지가 없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노후한 건물들이 밀집한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부지에서 건물들을 철거한 뒤 토양오염물질이 검출됐을 때 공공기관인 경우 위해성평가를 할 수 있지만 민간이라면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토양 오염 정화 체제를 국무조정실 권고 사항처럼 전환한다면 위해성평가 결과에 따라 정화 비용이나 공사 기간도 큰 폭으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큰 쟁점 사항이 될 수 있다.
박 변호사는 “국민 건강과 관련한 문제인 만큼 동일한 법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염 가능성 높아 보수적 기준 필요 = 국무조정실 권고 사항처럼 위해성평가 제도 중심 정화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평가체계 고도화 등 해결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내일신문 2월 17일자 환경면 참조>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에 실린 논문 ‘토양오염 우려기준과 토양 자연배경농도에 대한 위해성평가’에서도 “국내 위해성평가 인자들은 국외 위해성평가 자료를 참고하였기 때문에 국내 실정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국내 환경에 맞게 위해성평가 인자가 연구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환경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해 지침 고도화 등 관련 준비를 하는 중이다.
위해성평가 제도 중심 토양 정화 체계로의 전환을 규제 완화 신호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토양 중 불소 관리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좁은 국토에서 집약적인 산업발전을 이룬 나라에서는 토양오염 가능성이 주요국에 비해 상당히 높고 토양이 오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재사용할 필요가 높아 오염된 토양에 대한 정화기준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며 “토양환경보전법 제2조에 ‘토양환경기준’을 규정해 토양환경기준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고 이 정보를 통해 토양오염물질을 정화해야 하는 토양을 정하도록 하며 만약 위해성평가를 거쳐야 하는 물질인 경우에는 ‘정화기준’을 정해 이를 초과할 경우 정화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18일 환경부 관계자는 “위해성평가 기반의 토양오염 관리체계로의 전환은 주요 선진국 사례와 관련 전문가 의견, 관련 중장기 정책계획과 국조실 규제심판부 권고 사항 등을 고려했을 때 필요한 과제”라며 “다만 국내 위해성 평가·관리 역량확보와 병행 추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해성평가가 토양정화 등 보전 관리를 회피하거나 등한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세심한 설계를 할 필요가 있다”며 “위해성평가 제도를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확대·적용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