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함께 만들어가는 나의 인생영화

2014-05-13 11:01:58 게재

[우리동네 모임] NORI 극장

2012년, 육아로 잠시 잊고 있던 영화를 즐기기 위해 시작한 소박한 동호회가 있다. 어린 자녀를 업고 재워가며 참여하는
조금은 극성스러워 보이는 동호회원들의 행보는 영화를 통해 잃어버린 감성세포들을 깨운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예술영화가 관심을 받던 90년대 학번 다섯 아줌마들이 모여 만든 영화 동호회 ‘NORI 극장’.
영화를 공부한 이지은 씨와 영화를 사랑하는 네 아줌마가 들려주는 솔직담백한 영화 사랑을 살짝 엿보았다.


 

영화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로맨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의 영화모임. 영화라고는 흥행작만 간신히 보던 사람으로서 영화 동호회를 방문한다니 대학시절 접한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생소한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aki)의 ‘The Man’이라는 작품을 볼 것이라는 이지은 씨의 안내는 동호회원들의 고상한(?) 취향에 대한 걱정을 하게 했다. 그러나 하나둘 씩 들어서는 동호회원들은 별스런 사람들이 아니라 동네에서 그냥 만날 수 있는 이웃이라는 것이 영화의 반전 같다.
“영화가 끝난 후 남아있는 여운은 1시간 30분 정도의 러닝타임 이외에도 영화의 감정을 계속 이어지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는 끝났지만 서로의 감정을 나누다보면 오후 2시가 훌쩍 넘곤 해요. 영화를 담뿍 느끼는 시간이 소중하지만 매주 긴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저희 동호회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합니다”라는 이지은 씨.
“제 경우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동호회 활동을 했어요. 4~5개월 정도 아이를 업어 재우다가 영화보고 이야기하고 하다 보니 영화를 보는 흐름은 끊기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며 얻게 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는 싫더라고요”라며 이혜영 씨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다른 시각으로 하나의 영화를 본다는 것이 동호회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40대에 보는 영화가 다른 이유
불이 꺼지면 조용해져야하는 영화관과 NORI 극장의 영화감상 시간은 참 다르다. “전체적인 영화 색감이 참 예쁘지요?”, “저 가구 너무 예쁘지 않아요?”, “지난번 이 감독 영화에 나온 배우죠?”, “저 장면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중간 중간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영화모임이다. 모든 동호회원들이 장점으로 꼽는 서로의 시각과 경험 나누기는 영화 시작 전부터 끝난 후까지 모든 시간을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백아영 씨는 “예전에는 저만의 시각으로 영화를 봤어요. 그러나 영화모임을 하면서부터는 시각이 다양화되었어요. 서로의 시각으로 감정 나누는 것이 익숙해지니 자연스럽게 참가하지 않은 회원의 시각으로도 해석을 해보게 되더라고요”라며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를 접하게 되는 장점을 설명했다.
이혜영 씨도 “이제 혼자 영화를 보면 재미없어요.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서면서 그 감정이 다 사라지고 주변의 쇼핑공간으로 관심이 옮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닌가요?”라며 영화 끝난 후 바로 나눌 수 있는 감정의 교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경험에 따라 받아들이게 되는 영화의 특성상 심한 경우 한 영화의 잔상을 한 달 동안이나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고 한다. “각자 살아온 경험에 따라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대학 때 본 영화를 40대인 지금 보면 같은 영화임에도 다르게 보게 되는 것이 그 이유에요. 저희 모임은 현실과 동떨어진 특별한 공간에서 서로의 감정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요.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현실의 연장이며 인공적인 판타지 공간입니다”라는 이지은 씨. 그녀는 스스로 선택한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어떤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동호회원들이 있기에 NORI 극장의 문을 닫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면 비로소 우리들의 영화가 시작됩니다”
“보통 일주일의 시간들은 현실적인 시간들이에요. 그러나 영화를 보는 시간은 비현실적인 시간이지요. 결혼 전에는 이런 시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이곳에 오는 전날은 기다림과 설렘이 가득하답니다”라는 전재은 씨.
영화 보는 동안 계속 아이 돌보랴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랴 바빴던 윤태희 씨는 “육아로 인해 잃어버렸던 취미를 다시 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비슷한 연령대와 함께 하기에 공감하기 쉬운 것도 장점이고요. 영화를 보다보면 예전과 달리 과거, 현재, 미래에 따라 영화를 다르게 볼 수 있더라고요. 지금 현재는 영화를 보다보면 모든 것을 육아로 결부시키는 것이 특징이지만요”라며 동호회 활동시간은 죽은 감성세포를 다시 깨우고 현실에서 잊고 지낸 것들을 다시 깨우는 시간이라며 자신에게는 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올 4월부터 작가별 영화감상을 시작한 NORI 극장. 영화를 보기 전에 이뤄지는 배경과 작가에 대한 설명은 기본이다. 작가별 감상은 영화와 영화사이의 연결고리를 연결해보는 재미가 있어 영화를 보다가 전 영화와 비교하는 것이 관전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이지은 씨가 전해주는 세세한 영화 속 이야기는 하나의 보너스이며 각자의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감정들은 물론 현재와 미래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NORI 극장이 가진 매력이다.
 

이경화 리포터 22kh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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