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특별기획 | 박상주의 중남미 편지 2
"본선만 올라가면 주눅드는 징크스 이번엔 극복할까"
멕시코 탐피코에서 영화감독 주경중에게
정말 가슴이 철렁 했다네. 군부 쿠데타나 대규모 테러사건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을 정도였다니까. 멕시코시티에서 동쪽으로 550㎞ 떨어진 탐피코라는 공항에 내렸는데 공항청사 앞에 중무장한 군인들이 쫙 깔려 있지 뭔가. 장갑차까지 동원된 무시무시한 병력이었다네. 알고 보니 멕시코 마약 조직 간에 대규모 전쟁이 벌어져서 군인들이 출동한 것이었다네. 멕시코 동부의 타마울리파스주에서 나흘 동안 라이벌 갱단끼리 총질을 하면서 싸우는 바람에 무려 28명이나 죽었다는 거야. 언론에 보도된 사망자가 28명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게 이곳 주민들의 이야기일세.
타마울리파스는 멕시코 31개 주 중에서 치안이 가장 불안한 지역이라고 하더군. 낮에는 군인과 경찰 등 공권력이 장악하지만 밤만 되면 갱 조직들이 활개를 치는 무서운 곳이라는 거야. 세타스와 걸프카르텔이라는 갱단이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 공급 주도권을 놓고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이 한해 15조 원 어치나 된다는구먼.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마약조직끼리 그 이권 장악을 둘러싸고 서로 총질을 해대고 있는 거지. 갱단들은 멕시코와 미국 간 마약 운반용 지하터널을 뚫는가 하면, 깡통에 마약을 넣은 뒤 대포를 이용해 국경 너머로 쏘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다고 하네. 탐피코 공항은 그런 타마울리파스주의 관문격인 곳이었고, 갱단끼리 전쟁이 터지니까 군 병력이 출동한 것이었다네.
주경중 감독,
오랜 만일세. 그동안 잘 지내셨는가. 곧 촬영에 들어간다는 새 영화는 얼마나 진척이 되고 있는가. 영화제작을 위한 펀딩은 잘 되고 있는가. 배우 섭외는 순조로운지 궁금하구먼. 베를린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던 '동승' 같은 멋진 작품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하네. 개인적으로는 파격적인 베드신이 들어간 '나탈리'는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네. 멕시코에 오니까 불쑥 자네 생각이 나는구먼. 아마도 웬만한 갱 영화보다 훨씬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왔기 때문일 거야.
아 이런, 자네에게 안부를 전한다는 게 월드컵 이야기는 안하고 엉뚱한 사설만 잔뜩 늘어놓았네그려. 내친 김에 갱단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네.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이니까 조금만 참고 들어주시게. 지난 2011년 1월엔 중무장한 괴한들이 멕시코의 시우다드후아레스의 한 축구 경기장에서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구먼. 선수 1명을 포함해 7명이 숨졌고 2명이 부상한 사건이었지. 3대의 차에 나눠 탄 채 현장에 도착한 무장괴한들은 축구 경기 시작 직전에 나타나 그라운드를 향해 자동소총을 180발 가량 난사하는 끔찍하고도 황당한 사건이었다는구먼.
브라질, 크로아티아, 카메룬 등과 '죽음의 A조'
15회나 본선에 진출한 '북중미 강호' 자존심
여섯 번 연속 본선티켓 따내며 브라질행 기염
그것뿐이 아닐세. 그 다음해 1월엔 멕시코의 한 축구선수가 마약 밀수 조직과 결탁해 20여명의 남성을 납치하는 사건을 벌인 적도 있다네. 오마르 오르티스라는 전 축구선수가 몸값을 받아 낼 수 있을 만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거야. 물론 성공할 때마다 건당 100만페소(약8400만원)를 챙겼다고 하더구먼. 범행 대상은 인기 여가수의 남편 등 자기가 현역시절 사교 모임에서 만난 인물들이었다는 거야. 정말 영화보다 더 섬뜩한 이야기 아닌가.
독자들 화내시기 전에 본론인 축구 이야기로 들어가도록 하겠네. 멕시코는 치안은 불안해도 축구만큼은 아주 안정적으로 잘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지. 멕시코는 무려 15회나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거든. 브라질 20회, 독일 18회, 이탈리아 17회, 그리고 아르헨티나 16회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본선진출을 기록한 나라라고 하는구먼. 최근 6회 연속 본선 진출과 5회 연속 16강 진출 기록까지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 정말 대단한 성적 아닌가.
그리고 멕시코는 지금까지 월드컵을 두 번 개최한 다섯 나라 중 하나일세. 그것도 1970년 월드컵 개최한 뒤 불과 16년만인 1986년에 또 개최한 거야. 지금까지 가장 짧은 시간에 월드컵을 재개최한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지. 원래 1986년 월드컵은 콜롬비아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네. 그런데 갑자기 콜롬비아 화산이 폭발한 거야. 그래서 멕시코가 대신 개최하게 된 거지. 홈 어드벤티지 덕인지 모르지만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는 모두 8강까지 올랐다네.
그런데 말일세. 오랜 세월 멕시코 축구는 속된 말로 '첫 끗발이 개 끗발' 이었다고 할 수 있지. 본선에 올라가지만 하면 동네북이었거든. 1회 대회인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는 최강팀 아르헨티나를 비롯해서 프랑스, 칠레에게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지. 그 뒤로 1950년과 1954년, 1958년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했지만 다른 팀들에게 승점만 안기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네.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3대 1로 기록한 게 본 선 첫 승 기록이었지. 그나마 1승 2패로 토너먼트는 탈락하고 말았다네. 그러다가 1970년 자국 월드컵에서 2승 1무 1패로 8강 진출을 했지만 1974과 1978년, 1982년 대회엔 내리 본선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네. 그러다가 198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3승 2무로 다시 8강에 오르는 실력을 과시했지.
들쭉날쭉하던 멕시코 축구가 그야말로 북중미 강호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 이후로 올해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6회 연속으로 16강에 진출했거든.
이번 멕시코 월드컵팀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다소 노땅 층이 많다는 평을 듣고 있더라고. 물론 약점이면서도 강점일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 A매치에 119경기나 출전을 한 수비수 카를로스 살시도는 34살이고, 멕시코의 간판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라파엘 마르케스도 35살이거든. 살시도는 잡화점과 자동차용품점, 세차장에서 일하면서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던 친구였지. 어느 날 아마추어 경기에서 친구 대신 이름을 속이고 출전한 경기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선수라네. 마르케스 역시 이름 잘못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 당시 감독이었던 보라 밀루티노비치는 아틀라스클럽에서 뛰고 있던 세자르 마르케스를 호출했지만, 사무 착오로 엉뚱하게도 라파엘 마르케스가 뽑혔다고 하더군. 당연히 밀루티노비치는 마르케스를 되돌려 보내고 싶어 했지만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 이게 물건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거지. 마르케스는 이제 그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 팀에 합류를 하게 된 거라네.
그래도 멕시코 선수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선수는 역시 맨체스터 유나이드 소속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이 선수는 치차리토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선수이기도 하지. 치차리토란 스페인어로 '작은 콩'이라는 뜻이라고 하더구먼. 박지성 선수랑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축구팬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을 걸. 이번 월드컵에서도 멕시코 국민들이 가장 기대를 많이 걸고 있는 선수일거야. 다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 무뎌진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의견들도 있더라고.
조 편성에서도 멕시코는 참 사나운 상대들을 만났지. A조 멤버가 브라질, 크로아티아, 멕시코, 카메룬 아닌가. 오죽하면 멕시코가 속한 A조를 '죽음의 조'라고 부르겠는가. 브라질이야 워낙 전력이 강한 우승후보 아닌가. 나머지 한 장의 티켓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 가장 약체로 평가를 받는 카메룬이 어느 팀의 발목을 잡느냐가 A조 판도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이더구먼. 그러나 카메룬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게 만만하게 볼 팀이 아닐세. 출전선수 23명 중 21명의 선수가 유럽파거든. 더구나 사무엘 에투(첼시), 피에르 웨보(페네르바체), 알렉스 송(바르셀로나), 스테판 음비아(세비야)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할 정도일세. 멕시코는 과연 '죽음의 조'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주 감독,
그러고 보니 자넨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친구 아니었던가. 괜히 예술하는 서생 붙잡아 놓고 장황하게 따분한 이야기를 한 것 같구먼. 다음엔 내가 당신 영화 이야기 할 때 입 꾹 다물고 다소곳이 들어줌세. 좋은 영화나 만드시게. 사랑하는 나의 벗 두헌이랑 찬면이에게도 두루두루 안부 전해주시게. 다들 보고 싶구먼.
멕시코 탐피코에서 주경중 감독에게 지구촌 순례기자 박상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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