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에 '수출의 여인' 돌아왔다
1970년대 산업화시대 수출역군 상징 … "G밸리 젊은세대가 한국경제 미래"
공원 가운데는 흰 천으로 쌓인 동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강남훈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비롯해 이영재 서울디지털단지 경영자협의회 회장 등이 흰 천을 걷어내자 오른손에 횃불을, 왼손에 지구본을 안은 녹색의 여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수출의 여인상'이다. 산업단지 출범 50주년을 맞아 '수출의 여인상'이 40년간 지켜 온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오랜 풍상에 찌든 녹과 이물질은 말끔히 벗겨졌다. 동상이 처음 세워진 1974년 박 전 대통령이 하단부에 직접 쓴 '전산업(全産業)의 수출화(輸出化)' 문구도 되살아났다.
강남훈 이사장은 이날 '수출의 여인상' 제막행사에서 "지난 50년의 눈부신 성장이면에는 희생과 헌신으로 대변되는 구로공단 여성 근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성장이 있었다"면서 "산업화 세대와 그들이 이룩한 경제발전의 공로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여인상 제막행사는 산업화 세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지난 반세기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이제는 미래세대인 G밸리의 '신 수출 역군'들이 '제2의 기적'을 이끌어갈 주인공으로 바통을 이어받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출의 여인상'은 1970년대 수출주도의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산업단지의 상징이다.
'수출의 여인상' 정식 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근로여인상'으로 1974년 8월 12일 한국수출산업공단(현 한국산업단지공단) 창립 제10주년을 기념해 '수출산업공업단지 1단지 준공 기념탑' 위에 건립됐다. 이 동상은 현 서울디지털단지 제1 단지와 3단지를 연결한 '수출의 다리'와 함께 구로공단의 상징이었다.
'수출의 여인상'은 최기원 홍익대 미술대학 명예교수의 작품으로 1970년대 당시 구로공단의 주 근로자층이자 산업화, 수출역군으로서 역할을 다한 여성근로자를 모델로 했다.
어린 나이에 농촌에서 상경해 열악한 작업환경, 벌집촌 등에서 지내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나라 경제에 헌신했던 여성근로자들의 이미지를 담은 조형물인 것이다. 구로공단의 번성기였던 1978년에는 전체 근로자 11만명 중 60%가 여성이었다.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국가산업단지다. '수출 진흥과 국민경제 균형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1964년 착공, 1966년 2월에 완공됐다. 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로 구로지역 일대에 조성돼 '구로공단'으로 불렸다.
당시 이곳은 서울 변두리로 논과 밭, 야산이 있던 허허벌판이었다. 공단으로 조성된 후 당시 의류나 신발, 가발, 인형 등 봉제품을 만드는 여공들의 재봉틀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50년 후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었다. 1967년 말 31개사였던 입주기업은 2013년말 기준으로 현재 1만1911개사로 늘었다. 일하는 근로자 수도 1967년 2460여명에서 2013년 16만2032명으로 66배 가량 증가했다. 아파트형공장으로 불리는 지식산업센터도 2013년 말 총 107개소가 준공돼 산업단지 면적의 2.5배를 차지했다.